인권과 감수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의 일상을 아는 일
보이지 않던 장애인의 일상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하여
우리나라에는 약 263만 명의 장애인이 있습니다. 전체 인구의 약 5퍼센트에 해당하는 숫자이지요. 스무 명 중 한 명이 장애인이라고 보면 됩니다.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생 인구도 전체 인구의 약 5퍼센트입니다.(통계청, 2021) 그런데 왜 길을 가다 보면 초등학생은 보여도 장애인은 좀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사회생활하는 장애인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장애인 중 약 99퍼센트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냅니다.(2020년 장애실태조사) 우리 사회가 아직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생활할 만한 환경을 갖추지 못했다는 방증이겠지요.
과거에 비해 많은 이들이 장애인권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장애감수성의 필요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각각의 장애인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함께 살려면 무엇보다 서로의 일상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생각이 성숙한 친구보다 힘들고 좋았던 일을 시시콜콜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곁이 되고 이웃이 되듯,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려면 더 소소한 이야기를 터놓고 나눌 자리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인권과 감수성보다 장애인의 일상에 주목합니다. 아무리 입장 바꿔 생각해 보려고 해도 떠오르는 상대가 없어서 그려지지 않던 장애인의 일상을, 동료로 가족으로 함께 살며 깨우친 저자가 알려 줍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에서 장애인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장애인 친구와 여행을 가거나 식사 약속을 잡으며 한번쯤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직장에서 장애인 동료와 함께 일하며 가져야 할 태도나 준비해야 할 것,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는 어떤 것이 있는지.
저자의 목소리는 비관적이지도 낙관적이지도 않으며, 호소나 고발도 아니고, 고통과 슬픔을 묘사하지도 않습니다. 알기만 해도 의미 있을 일을 담담히 보여 주며 멀게만 느껴졌던 장애인의 삶을 성큼 가까이 가져오지요.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쪽은 언제나 공부보다는 소통이라며, 더 소소한 일로 더 자주 소통할 때 몸이 만든 경계가 무의미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만큼 이 책은 장애인을 이해하고 장애를 공부하는 데 가장 좋은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다양한 사회적 차별에 반대하면서도 유독 장애만은 멀게 느껴 왔던 분들, 혹여 무지가 무관심으로 비춰질까 봐 장애인 친구와 관계 맺고 소통하기를 조심해 왔던 분들께 함께 읽기를 권합니다.
장애에 대해 아는 것은 장애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일
한국은 OECD 국가 중 건강염려증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입니다. 당장 아프지 않아도 찾아올 질병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지요. 그럼에도 유독 장애만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노화와 질병과 달리 장애는 여전히 삶의 예외로 치부되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장애인 중 약 90퍼센트는 비장애인이었다가 사고나 질병 또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장애인이 된 중도 장애인입니다. 그 결과 장애는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는 비극이고 가족의 고통이 되기도 하지요.
안타깝게도 학교나 직장에서는 여전히 장애인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장애에 대한 논의의 기회도 턱없이 부족하고요. 그렇기에 장애인이 되면 돌이킬 수 없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때 참고할 만한 가이드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자가 전하는 동료와 가족의 이야기 속에는 장애인의 삶을 먼저 살아 본 사람들의 목소리가 녹아 있습니다. 장애인이 되어 새롭게 마주한 직장과 집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문제를 마주했고 어떻게 풀어 나갔으며 어떤 식의 지원을 요구해야 했는지, 주변 사람들과는 어떻게 새롭게 관계 맺었고 혼자 풀 수 없는 문제를 누구와 어떻게 해결했는지. 그렇기에 이 책은 장애인과 함께 살고자 하는 비장애인뿐 아니라 불현듯 찾아온 장애를 마주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작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자의 바람처럼 이 책을 시작으로, 그간 누구에게도 불평하지 않고 감내해 오기만 했던 하찮은 불편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함께 해결해야 할 우리의 문제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