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매화
박규리
다른 길은 없었는가 청매화 꽃잎 속살을 찢고 봄날도 하얗게 일어섰다 그 꽃잎보다 푸르고 눈부신 스물세살 청춘 오늘 짧게 올려 깎은 머리에서 아직 빛나는데 네가 좋아하는 씨드니의 푸른 바다도 인사동 네거리의 생맥주집도 그대로다 그 사람 떠나고 다시 꽃핀 자리마저 용서했다더니 청매화 꽃잎 꿈결처럼 날리는, 오늘 채 여물지도 않은 솜털들을 야무지게 털어내다니 정말 다른 길 없었느냐 새벽이면 동학사로 떠날 이른 봄 푸른 이끼 같은 아이야 여벌로 더 장만한 안경과 흰 고무신 한 켤레 머리맡에 챙겨놓고 잠든 너의 죄 없는 꿈을 마지막으로 쳐다보다 눈부시도록 추울 앞날을 위해 이 봄날, 떨리는 손으로 두툼한 겨울 내복 두 벌 가방 깊숙이 몰래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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