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
하상만
종수네 아버지가 돌아가시려 할 때 어머니가 엎드려서 또박또박 유언을 받아 적었다 형은 집 두 채 누나는 집 한 채와 현금 삼천만 원 종수에게 남긴 것은 없었다 평생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던 아버지가 숨겨 둔 재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수십년 전 친구에게 빌려 준 돈을 돌려받기라도 한 걸까 가족들은 한순간 흠칫, 했지만 없었다 아버지는 관 값도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서 가셨다 종잇조각에 불과한 유언장 그 유언장 때문에 제삿날마다 종수네 가족들은 웃는다 하늘나라에서 아버지가 집을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 몸가짐을 잘 해야 한다 현금 삼천만 원을 주신다고 했으니 꿈속에서 로또 번호를 불러 주실지도 모를 일이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고 단속들을 한다 언제부턴가 정갈하게 두 손을 모으고 잠드는 버릇이 종수네 가족에게 생겼다 회사에 다니는 형과 누나는 잠자는 자세가 바뀌니 일이 잘 풀린다고 맞장구쳤고 아무 유산 없이 살아갈 수 있으리라 아버지가 믿었다고 생각하니 종수의 어깨엔 절로 힘이 갔다
[출처] 가족의 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