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
정호승
너거 아버지는 요새 똥 못 눠서 고민이다
어머니는 관장약을 사러 또 약국에 다녀오신다
내가 저녁을 먹다 말고
두루마리 휴지처럼 가벼운 아버지를 안방으로 모시고 가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늙은 팬티를 벗기신다
옆으로 누워야지 바로 누우면 되능교
잔소리를 몇번 늘어놓으시다가
아버지 항문 깊숙이 관장약을 밀어넣으신다
너거 아버지는 요새 똥 안 나온다고 밥도 안 먹는다
늙으면 밥이 똥이 되지 않고 돌이 될 때가 있다
노인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 사촌여동생은
돌이 된 노인들의 똥을 후벼파낼 때가 있다고 한다.
사람이 늙은 뒤에 또다시 늙는다는 것은
밥을 못 먹는 일이 아니라 똥을 못 누는 일이다
아버지는 기어이 혼자 힘으로 화장실을 다녀오신다
이제 똥 나왔능교 시원한교
아버지는 못내 말이 없으시다
어머니는 굽은 등을 더 굽혀 설거지를 하시다가
너거 아버지 지금 똥 눴단다
못내 기쁘신 표정이다
<한 마디 - 강학중>
부부가 오래 살다 보면 저렇게 변하는 거겠지, 싶다.
남편의 팬티가 '늙었다'는 시인의 표현이 와닿는다.
나이들면 팬티라도 젊은 놈으로 하나 장만해야 하는 것일까,
웃음이 났다.
하지만 두루마리 휴지처럼 가벼워진 아버지를 지켜보는
자식의 마음은 어땠을까?
똥 나왔는지, 시원한지를 묻는 아내의 말에
못내 말이 없는 남편의 심정이 짐작이 된다.
그리고 남편이 똥을 눴다고 좋아하는 아내의 모습이 참 예쁘다.
그러나 모든 부부가 저렇게 관장약을 밀어넣어 주고
배우자가 똥을 눴다고 좋아하진 않을 게다.
나이들수록 친구처럼, 연인처럼 살자던 아내의 말대로
곱게 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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