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돼!”
남편의
절박한 외침도 윤하 씨의 눈을 다시 뜨게 할 수는 없었다. 윤하 씨 곁에 엎드린 남편 얼굴에, 윤하 씨 손을 잡은 일곱 살 딸아이 얼굴에,
주치의인 내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윤하 씨와 남편은 첫눈에 반해 남들보다 일찍 결혼했다. 그런데 사랑과 축복 속에 낳은 첫 딸아이가
다운증후군이었다. 그들은 아이에게 형제가 많으면 힘이 되어줄 것 같아서 연년생 둘을 더 낳았고 20대에 세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스물아홉 살,
말기 위암 환자인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로서 아직 할 일이 많았다.
“안 돼!”
남편의 절박한 외침도 윤하 씨의 눈을 다시 뜨게
할 수는 없었다. 윤하 씨 곁에 엎드린 남편 얼굴에, 윤하 씨 손을 잡은 일곱 살 딸아이 얼굴에, 주치의인 내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윤하 씨와 남편은 첫눈에 반해 남들보다 일찍 결혼했다. 그런데 사랑과 축복 속에 낳은 첫 딸아이가 다운증후군이었다. 그들은 아이에게
형제가 많으면 힘이 되어줄 것 같아서 연년생 둘을 더 낳았고 20대에 세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스물아홉 살, 말기 위암 환자인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로서 아직 할 일이 많았다.
“애들은 어떡하죠?”
나는 투병 중인 윤하 씨에게 그렇게 물었었다.
“어떡하긴요.
할 수 없죠.”
그녀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윤하 씨의 말처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어쩔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그녀는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워야 했을까.
오늘 윤하 씨는 앙상하게 뼈가 드러난 하얀 손으로 일곱 살 맏아이의 손을 꼭
부여잡고 잠이 들었다. 심장이 멈추고 온기가 사라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도 눈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호스피스 의사가 된 지 5년이
지났다. 병실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누구든, 어떤 삶을 살아왔든, 참 잘 살았다고 격려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나는 ‘죽음’과
‘죽어감’을 돌보는 사람으로서 죽음에 관한 오해를 풀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낀다.
죽음을 배우면 죽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달라진다. 자신의 마지막을 정면으로 응시하면 들쭉날쭉하던 삶에 일관성이 생기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그렇게 나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자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당신과 나누고 싶다. <프롤로그> 중에서
벚꽃이 모두 질 무렵, 연숙 씨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앙상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난 아내를 보며 그녀의 남편이 말했다.
“아름답게 지는 꽃은
없어도 깨끗하게 지는 꽃은 있네요.”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몽땅 빠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젊은 날
만개한 꽃처럼 아름다웠던 연숙 씨를 사랑했을 그녀의 남편은 아내의 아름다움이 지고 난 뒤 그때와는 또 다른 애틋함으로 그녀를 보듬었을 것이다.
<지는 꽃도 아름다워라> 중에서
호스피스를 ‘죽음에 관한 동화’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통증에 몸부림치던
암 환자가 호스피스에 와서 통증을 조절하고 삶을 잘 정리한 뒤 편안하게 죽었다’라는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죽었다’는 말만 기억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기억해야 하는 것은 죽기 직전까지 그가 어떻게 살았고 얼마나 행복했는지가 아닐까.
모든 죽음은 슬프다. 비록 슬픔 속에서
떠나더라도 우리는 죽음 직전까지 행복해야 한다. 생명을 연장시키고 죽음을 중지시키려는 열망 때문에 마지막 여행을 즐기지 못한다면 슬픔은 불행으로
변질되어 남은 삶에 시커먼 먹구름을 드리울지도 모른다.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기억은, 이혼으로 종결된 결말이 아니라 뜨겁게
사랑해서 결혼한 과정, 죽음이라는 끝맺음이 아니라 죽기 전까지 행복하게 살았던 시간일 것이다. <‘지나간 삶’보다 ‘남은 삶’을 놓치지
마세요> 중에서
눈물의 임종 선언, 그
마지막 순간에 인생의 선배들이 알려준 삶의 정답들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마주해야 할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이야기 “오늘도 나는
임종실에서 하루를 연다. 하지만 그들과의 이별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800여 명의 환자에게 임종 선언을 해오면서도
여전히 누군가의 죽음에 담담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 그녀가 자신이 일하는 대구의료원 평온관에서 말기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았던 환자들의 삶과 죽음을 이 책에 담았다. “저는 죽음에
관한 동화를 쓰려는 게 아닙니다.”
책이 완성될 때까지 그녀가 내내 지켜왔던 말처럼, 그녀는 환자들의 ‘죽음’에 억지스러운 의미를
덧붙이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 환자들이 건넨 말들, 함께 흘린 눈물을 옮겼을 뿐이다. 그녀가 이 책의 집필 과정을 “써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환자들의 이야기를 읽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이 책은 언젠가는 반드시 우리에게 올 죽음의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한다.
눈물의 임종 선언, 그 마지막 순간에 인생의 선배들이
알려준 삶의 정답들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마주해야 할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이야기
“오늘도 나는
임종실에서 하루를 연다.
하지만 그들과의 이별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800여 명의 환자에게 임종
선언을 해오면서도 여전히 누군가의 죽음에 담담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 그녀가 자신이 일하는 대구의료원 평온관에서 말기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았던 환자들의 삶과 죽음을 이 책에 담았다.
“저는 죽음에 관한 동화를 쓰려는 게 아닙니다.”
책이
완성될 때까지 그녀가 내내 지켜왔던 말처럼, 그녀는 환자들의 ‘죽음’에 억지스러운 의미를 덧붙이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 환자들이 건넨 말들,
함께 흘린 눈물을 옮겼을 뿐이다. 그녀가 이 책의 집필 과정을 “써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환자들의 이야기를 읽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이 책은 언젠가는 반드시 우리에게 올 죽음의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한다.
호스피스 병동, 그곳에서
마주한 짧은 삶과 죽음의 이야기
흔히 사람들은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환자들에게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통증이다. 암 세포의 무차별한 공격으로 “아기 낳는 고통”보다 더한 통증을 하루 종일 겪기도 하는 환자들은 그래서 의사인
그녀에게 차라리 “죽여주세요”라는 말을 내뱉기도 한다.
저자는 그토록 무서운 통증과 싸우는 환자들이 어떻게 ‘남은 삶’을 살아냈는지,
어떻게 마지막 순간과 마주했는지를 전한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찾아온 동재 아저씨는 암 세포로 얼굴의 절반이 없어졌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신은 맑았던 환자였다. 흉측해진 얼굴과 참을 수 없는 통증으로 수없이 자살에 대한 충동을 느끼면서도 그가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삶을
살아낸 이유는 아들들 때문이었다.
“두 아들이 결혼해서 잘 살고 있어요. 죽을 때 죽더라도 자살은 할 수 없어요. 애들한테 상처가
될테니까….”
15년 동안 일곱 차례의 수술을 받으며 머리뼈에 생긴 암과 싸워오다 더 이상의 재수술은 어렵다는 진단과 함께 시력마저 잃게
된 경혜 씨 역시 자살에 대한 충동을 참으며 ‘남은 삶’을 열심히 살아낸 이유는, 자신의 인생을 자살로 망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호스피스
봉사 팀이 음악을 좋아하는 경혜 씨를 위해서 음악회를 열어주었을 때,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감각을 총동원해 음악을 듣고 나서 그녀가 한 말은
“아, 행복해”였다.
자신의 고통을 아들들이 받을 상처와 맞바꾸지 않았던 동재 아저씨와 죽음 직전까지 행복하고자 했던 경혜 씨. 저자는
이토록 가슴 아픈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다운증후군인 일곱 살 맏아이의 손을 꼭 부여잡은 채 세상을 떠난 윤하 씨, 얼마 남지
않은 삶도 병동에서 봉사하며 지낸 종국 아저씨, 머리카락이 몽땅 빠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내를 보듬던 연숙 씨 남편, 아이스크림과 임종실에
계신 할머니를 바꿀 수 없냐며 울던 지경이까지, 눈물을 쏟게 만드는 그들의 마지막 순간은,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이순간의 귀중함을
일깨우며 삶의 문제들까지도 풀어버린다.
“죽음을 배우면 죽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달라진다. 자신의 마지막을 정면으로
응시하면 들쭉날쭉하던 삶에 일관성이 생기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그렇게 나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자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당신과
나누고 싶다.”(본문_10쪽)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에 맞닺뜨렸을 때, 아무리 애를 써도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을
때, 그래서 오늘이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극단적인 바람이 들 때, 그럴 때는 나는 당신이 호스피스 병동을 찾았으면 한다. 죽음은 그 모든 문제들의
정답을 가지고 있다.”(본문_241쪽)
인생의 완성을 위한, 이순간의 감사를 위한 ‘죽음 공부’
의과대학에 다니던 중 결혼을 하면서 공부를 중단했던 저자가 호스피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졸업 후 13년, 서른아홉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녀는 가정의학과 수련 과정 중 얼마든지 통증 조절이 가능한 데도 암성통증(암 환자가 겪는
통증)으로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환자를 보며 더없는 안타까움을 느꼈고 그 안타까움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어루만지는” 호스피스 일로
이어졌다. 그리고 호스피스 활동은 그녀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삶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했던 나는 호스피스 생활을 하면서 달라졌다.
여유가 생겼고 넉넉해졌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았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시키지 않았다.”(본문_103쪽)
“왜 아직 죽을 때도 안 된 사람들까지 호스피스에 관심을 가져야 하죠?”
호스피스 활동에 여념이 없는 엄마를 향해 그녀의
아들이 퉁명스럽게 내뱉은 이 물음은 실은 독자들의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녀는 아들에게 답했듯 우리에게 답한다.
“누구나 한 번은 오는
곳이니까. 그게 언제일지는 몰라도.”
그녀의 말은 이어진다. “같은 이야기라도 결말이 다르면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가 되어버리듯, 내 삶의
과정과 다른 마지막은 내 인생을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고.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그 마지막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 불편하더라도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하여 그녀가 호스피스 환자들의 삶과 죽음을 덧붙임
없이 담아낸 이 책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공부의 시작이 될 것이다.
* 이 책의 인세는 모두 호스피스 환자를 돕기 위한 활동에
쓰입니다.
추천의 글
호스피스는 죽음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삶을 포기하고 죽음을 마냥
기다리는 사람의 삶과 삶을 완성하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의 삶은 너무나 다르다. 죽음도 준비를 하면 떠나는 이들에게 축제가 될 수 있고 남겨진
이들에게 추억이 될 수 있다. 죽음의 준비는 호스피스 돌봄자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들 가운데 김여환, 그녀가 있다. 나를 호스피스 멘토라고
부르는 그녀는 이제 나의 동지이자 동반자이며 내 스승이 되고 있다. 그녀가 사랑을 나눈 귀한 이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가득하다. _메리포터
호스피스 영성연구소 손영순.카리타스 수녀
법구경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관심은 진실한 삶으로 향하는 길이고, 무관심은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다. 때문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죽지 않고, 관심이 없는 사람은 이미 죽은 것이다.’ 그렇습니다. 의식하지 않는 행복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삶도 죽음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를 설명하고 그 처방까지 세세하게 다뤘습니다. 죽음을 극복하는 내용일 것 같지만 결국 삶의 이야기입니다. 삶과 죽음의 혼란과 불안 속에
있는 우리에게 올바른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_정법 스님
의학전문기자로서 김여환 소장을 인터뷰하면서 나눈 대화 중에 "죽음을
보면 삶의 시작이 보인다"는 말이 가슴에 깊이 남겨져 있다. 그런 면에서 김여환의 죽음 이야기에는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담겨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마치 끝이 없는 삶을 사는 냥 시작만을 고민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을 보고 인생의 역순으로 삶의 계획을 세워보면 삶이
더 풍요롭고 촘촘해지지 않을까. _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 영상의학과 전문의
<책속으로 추가>
동재 아저씨의 마지막 얼굴은 해부가 끝난 카데바처럼 변해 있었다. 매일 암 환자를 보는 나에게도 동재 아저씨의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처참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동재 아저씨의 정신은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맑았다. 수없이 자살을 생각했던 그는, 그러나 나의 다른
환자들처럼 생명의 에너지가 다하는 순간까지 살았다.
“두 아들이 결혼해서 잘 살고 있어요. 죽을 때 죽더라도 자살을 할 수 없어요.
애들한테 상처가 될 테니까…….”
말기 암 환자가 되면 상상할 수 없는 통증 때문에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힘들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살을 떠올리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재 아저씨는 자신의 고통을 아들들이 받을 상처와 끝내 맞바꾸지 않았다. 내가 동재
아저씨를 존경했던 건 그가 죽음이라는 시련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고, 그렇게 자기 인생의 승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죽음보다 힘든 삶을 견뎌야 하는 그들> 중에서
말기 위암 환자인 영철 씨의 암성 통증을 조절하기 위해 내가 패치를
처방했을 때였다. 투명한 반창고처럼 생긴 패치는 한 번 부착으로 사흘간 효과를 지속할 수 있는 마약성 진통제다. 영철 씨는 약물 부작용이나
통증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영철 씨를 찾아갔을 때, 그는 벌컥 화부터 냈다.
“인턴이 내가 붙인 패치를 보고,
‘이거는 마지막에 하는 마약인데요’라고 말했어요. 저 아직은 마지막이 아니거든요.”
나는 영철 씨를 설득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오해가 풀릴 때까지 영철 씨가 통증에서 벗어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교육받지 못한 의료진이 환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나는
호스피스 의사로서 당부하고 싶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때가 오면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 모르핀을 거절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나는 신이 우리가
아프지 않게 죽어가기를, 그리하여 죽음의 맨얼굴을 응시하기를 바랐을 거라고 감히 생각한다. <모르핀,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
중에서
[출처]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