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최태원 회장이 500쪽 분량의 상고 이유서를 제출했다는 신문 기사 제목들이 요란하다. ‘노소영과 1조 3800억 이혼 뒤집힐까?’, ‘최태원-노소영 초호화 전관 변호인단 맞대결’. 대법원장 후보로 올랐던 변호사와 전 감사원장 출신 변호사를 양쪽이 추가로 선임하면서 법조계 별들의 전쟁이 시작됐다고 야단이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2021년 517명이던 이혼 전문 변호사가 2024년 851명으로 64%나 급증했다고 한다. 가사사건 수임을 잘 하지 않던 대형 법무법인들도 가사, 상속 분야의 전문성을 강화하면서 이혼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SBS TV의 이혼 소재 드라마 ‘굿파트너’가 시청률 13.7%를 넘기며 순항 중이다. 이혼 전문 변호사가 직접 대본을 썼다고 해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드라마뿐 아니라 예능에서도 이혼 주제 콘텐츠가 크게 늘었다. TV조선의 ‘우리 이혼했어요’를 시작으로 MBC TV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 OTT 티빙 ‘결혼과 이혼 사이’, JTBC의 ‘이혼 숙려 캠프’ 등. TV조선에서는 ‘이제 혼자다’ 라는 프로그램을 새로 선보였는데 아직 ‘이혼 진행 중’인 방송인을 출연시켜 논란을 낳고 있다. 유명인들의 가상 이혼까지를 다루는 MBN의 ‘한 번쯤 이혼할 결심’까지, 그야말로 방송에서 이혼을 파는 세상이 되었다.
나는 서울가정법원에서 조정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엔 무엇보다 자녀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하여 친권과 양육권, 양육비와 면접교섭권을 먼저 다룬다. 하지만 진심으로 아이를 키우겠다는 부모는 줄고 돈만 밝히는 부모들이 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친권이나 양육권, 양육비와 면접 교섭권을 다툴 필요가 없는 황혼이혼 같은 경우엔 재산분할과 위자료가 중요한 쟁점이 되어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려는 싸움이 치열하다.
단순히 돈을 떠나 유책 사유에 대한 배상의 의미와 이혼 이후의 생활이 걸려 있는 문제라 타인의 재산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재산을 은닉하거나 빼돌리고 양육비를 한 푼이라도 덜 주려고 싸우고, 주겠다고 약속한 양육비마저도 제때 안 주고 골탕을 먹이는 부모를 보면 화가 난다. 다시 잡은 조정기일에 상대방이 본인의 요구 사항을 다 들어주겠다고 양보했는데도 얼굴에 철판 깔고 억지 한 번 더 부리면 몇백만 원, 몇천만 원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속셈인지 끝까지 트집을 잡고 꼬장을 부리는 사람도 있다.
이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정서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가 된 지 오래고 요즘은 대놓고 이혼에 얽힌 시시콜콜한 얘기, 지극히 사적인 일까지 방송에 나와 폭로하는 세상이 되었다. 출연한 사람이 거짓말은 안 한다고 하더라도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도 없이 한 사람의 일방적인 얘기만 내보내는 것이 옳은 일인지 묻고 싶다.
이혼은 당사자만의 일이 아닌데도 관계되는 사람들, 특히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깊이 고민하지 않고 수많은 시청자가 보는 TV에서 저런 얘기까지 해도 되나, 저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저러나 걱정된다. 이혼이야 개인의 고유한 결정 사항이지만 방송에 출연해 저렇게까지 다 까발리는 이유와 입장은 또 무엇일까 궁금하고 안쓰럽다.
이혼이 증가하는 이유는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여성들의 의식이 크게 변했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늘고 경제력이 생기면서 이제 더 이상 참고 살지 않는다. 남녀평등과 여성의 인권이 강조되고 호주제 폐지, 재산분할 청구권과 면접교섭권 강화, 자녀 성본 변경 허가 등 법이 개정된 것도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성이 개방되면서 배우자 아닌 이성을 자유롭게 만날 기회나 수단이 크게 늘었다. 혼자 살기 편리해진 일상도 한몫한다. 개인주의도 심해져 자녀의 삶도 중요하지만 내 행복도 찾아야겠다는 의식도 강해졌다. 이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혼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부드러워지고 평균수명까지 늘어나면서 이혼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무조건 이혼을 말리거나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참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는 설득력을 잃어 가고 있다. 하지만 이혼을 너무나
별거 아닌 일, 쿨한 일로 치부하는 사회 분위기나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 이혼을 다루면서 날이 갈수록 더 자극적인 내용을 내보내는 방송 프로그램은 우려스럽다. 이혼하기로 결심했다고 하더라도 가능하면 협의 이혼을 하는 게 좋으며 크고 작은 쟁점에 합의가 안 될 때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조정이혼도 차선책이 될 수 있다. 설사 소송을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재판까지 가지 말고 조정 기일에 조정으로 끝내는 게 서로 win-win 하는 지름길이다. 재판으로 간다고 이긴다는 보장도 없으며 원하는 것을 다 얻지도 못한다. 그 긴긴 세월을 싸우느라고 만신창이가 되어 정작 내 삶을 행복하게 하는 데 써야 할 에너지를 다 낭비하기 때문이다. 이혼 안 하는 사람들 모두가 깨가 쏟아지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가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혼을 안 하고 못 하는
것이다. 돈이나 자식 때문에, 혼자 사는 것이 엄두가 안 나서,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나 가족의 반대, 종교적인 이유, 타인의 시선 때문에, 아니면 그놈의 정이나 성적인 욕구 등으로. 깨끗하게 갈라서는 것이 백 번 낫다고 얘기하지만 이혼한다고 해서 두부모 자르듯이 관계가 정리되는 것도 아니다. 이혼하지
말라고 무조건 말리는 것이 아니라 지켜나갈 가치가 있는 결혼생활도 있으니 좀 더 신중하게 결정하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설사 이혼하더라도 자녀가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도록 시기나 방법, 그리고 이혼 과정에서 부모가 해야 할 일, 해서는 절대 안 되는 일들을 성숙하게 챙겨야 한다.
출처 :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 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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