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어버이날에 이어 부부의 날까지 온통 가족의 화목을 강조하는 가정의 달 5월이지만 가족을 안 보고 사는 사람도 많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가족 문제 전문가인 셰리 캠벨은 저서 ‘가족을 끊어내기로 했다’에서 지속해서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가족은
단절하라고 강조한다. 가족 학대 생존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관계 단절이 왜 정당방위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신체적 학대나 성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정서적인 학대나 언어폭력을 일삼거나 지나치게 통제하며 조종하는 가족, 심리적인
지배(가스라이팅)를 하거나 전체가 한 사람을 따돌려 희생양을 만드는 가족, 무시하고 모욕을 주며 계속해서 수치심과 죄책감을
들게 하는 가족, 염탐하거나 이간질하고 사생활을 침범하며 조롱, 멸시, 협박하는 가족과는 경계선을 긋는 것이 좋다.
가족인데 어떻게 그러냐, 부모와 단절하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들 하지만 연인이나 친구, 동료와 헤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속해서 나를 괴롭히고 내 삶을 망가뜨리는 부모나 형제자매, 성인이 된 자녀나 친척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아예 인연을 끊고
안 보고 살 수도 있고, 자신이 대면할 힘이 생기거나 관계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만나는 횟수를 제한할 수도 있다.
헤어져야 할 대상에서 가족만 유독 예외를 두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 가족에 대한 잘못된 신화나 왜곡된 신념을 수정할
때가 되었다.
가족과 경계선을 긋는다는 것은 악의나 증오, 고집 때문이 아니다. 용서할 줄 몰라서, 너무 예민해서도 아니고 복수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들에게 해를 끼치거나 상처를 주기 위해서, 화를 돋우기 위해서도 아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다. 내가 원해서 끊는 게 아니라
나의 생존을 위해서는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은 부부라 하더라도 내 삶을 망가뜨리는 사람이면 이혼을 감행한다. 하물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그런다면 더욱더 결별을 선택하지 않겠는가. 천륜이나 인륜을 들먹이며
비난하는 부모도 있지만 인륜이나 천륜을 먼저 저버린 그들이 그런 얘기를 할 자격은 없다.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밖에 모르고 가족을 괴롭히고 끊임없이 상처를 주면서 자기에게만 관심을 두기를 강요한다. 대화를
독점하고 특별 대접을 받기 원하며 자기 뜻을 거스르면 불같이 화를 낸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편 가르며 희생양을 만들어 낸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악마 같은 가족이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실제 그런 가족은 엄연히 존재한다. 원수 같은 가족이 적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가족과 단절하고 사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비난받는다.
그런 사람은 자기 잘못을 시인하지 않으며 사과하지 않는다. 사과할 줄 모르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자신이 피해자라고
우기면서 오히려 피해자를 감사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인간이라고 모함한다.
가족 사이에서 은밀히 벌어지는 일들은 증명하거나 증거를 들이대기가 무척 어렵다. 가해자는 지극히 교활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애정을 과장해서 표현하거나 봉사 활동 등으로 본모습을 감추고 포장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다고 가해자 편을
드는 사람이 많다.
가족과의 단절을 결심했다면 내가 참을 수 있는 것과 참을 수 없는 한계를 분명하게 정하고 경계선을 그은 다음, 편지나 이메일,
전화, SNS 어떤 방법으로 연락을 해 오더라도 응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오로지 자신을 보살피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으면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외로움과 고립감이 밀려오면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그 외로움과 허전함을
달래려고 사랑과 관심을 구걸하면 그것이 오히려 더 버림받는 지름길이 된다. 내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서 내가 갈구하는 사랑과
관심을 내가 선물하면 된다. 나를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임을 명심하자.
누구의 지지나 이해를 구하고 싶겠지만, 안타까워만 할 뿐 진정으로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누구의 허락이나 지지를 반드시 얻어야 할 필요도 없다. 구구절절 설명하려고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
고통이나 상처의 깊이를 가늠조차 못 하고 과소평가한다. 대화를 통해 그간의 사실을 얘기하고 호소하면 가해자가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그런 희망이나 기대는 독이 되어 나의 상처를 다시 헤집어 놓는다.
관계만 단절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시작일 뿐이다. 가해자는 연락이 끊긴 뒤에도 끊임없이 피해자를 괴롭힌다.
비싼 선물이나 카드로 기회를 엿보기도 하고 경제적인 학대로 피해자를 조종하기도 한다. 돈은 피해자를 조종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그들이 즐겨 쓰는 방법이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접근해 오기도 하는데 자신이 피해자며, 희생양이 된 사람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비방하면서 2차 가해를
시작한다. 피해자와 가까운 사람을 메신저로 이용해서 접근하기도 한다. 그 메신저조차 그들의 거짓말에 넘어가 피해자의 고통도
모르고 화해만 종용하면 그것 또한 2차 가해가 되어 괴로움이 가중된다.
그들은 나와 가까운 배우자나 자녀, 친구와의 관계를 망가뜨리는 방법으로 잔인하게 복수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관계가 깨져서 내 주위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게 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가해자와 단절한다고 해서 모든 인간관계를 다 끊을 수는 없다. 크고 작은 모임이나 기념일, 가족 행사, 명절 때 아주 안 볼 수 없는
가족이나 친척들과의 관계는 참 풀기 어려운 숙제이다. 하지만 나의 상처를 건드리고 해를 끼치는 사람과는 당분간 거리를 두는 게
좋다. 화제에 올리지 말았으면 하는 대화 주제를 미리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모든 대화 주제를 내가 통제할 순 없는
노릇이니 내 감정을 조절하며 버티는 힘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가해자의 질병이나 죽음이 닥치면 급격한 혼란에 휩싸인다. 그들이 내 삶에 다시 끼어들 절호의 기회로 악용하기 때문이다.
정답은 없다. 자신에게 무엇이 최선의 방법인지 자문해 보고 차분하게 결정해야 한다.
가해자에게 편지를 쓴 다음 태우거나 나 자신에게 얘기하듯이 일기를 쓰고 감정 그 자체를 수신인으로 하여 편지를 써 보는 방법,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 치유는 무한한 인내를 요구하는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이다. 스스로 가족과 단절하겠다고
엄청난 용기를 내고 버텨온 자신을 격려하고 보살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청해야 한다.
엄청난 용기를 내어 가족과 단절한 뒤, 다시 태어나 자기 삶을 가꾸어 나가는 자신에게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사소한 다툼이나
불화가 있다고 해서 가족과 인연을 끊으라는 말이 아니다. 노력도 안 해보고, 내 잘못은 없는지 돌아보지도 않고 남 탓을 하며 가족과
절교하라는 얘기도 아니다. 그것이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일 때는 가족과 단절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이다.
[출처] 데일리임팩트2024/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