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촬영이나 드레스, 메이크업, ‘스드메’가 결혼식의 필수가 된 지는 오래다. 그런데 ‘퍼얼레’라니? ‘퍼얼레’는 드레스 숍에서
새 드레스를 처음 입어 보는 퍼스트 웨어, 오전 9시 이전 또는 오후 5시 이후에 메이크업을 받는 얼리 스타트와 레이트 아웃이면
추가금을 요구한다고 해서 붙여진 신조어다.
웨딩이란 단어만 붙으면 가격이 비싸지고 결혼식을 준비하는 거의 모든 과정에 추가금이 붙는 게 현실이다. 음식점의 메뉴판에
가격을 표시하듯이 가격을 표시하는 결혼서비스 업체가 별로 없는데, 가격을 표시한 업체도 현장에 가면 각종 명목으로 추가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웨딩 플래너 없이 직접 알아보면 모든 게 비싸지고 패키지로 묶다 보니 뭐가 얼마인지 알 수가 없다.
표준 약관도 없이 불리한 면책 조항에 과다한 위약금까지 요구하는 업체가 적지 않아 분쟁이 잦다.
큰돈을 쥐고 있는 신랑 신부들은 ‘한 번밖에 없는 결혼식인데’ 하는 마음에 순간적인 충동이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또는
결혼식을 망칠까 봐, 서로 얼굴 붉히기 싫어서 지갑을 여는 고객이 을이 된다. 그동안 뿌린 돈이 얼마인데 하는 부모의 욕심 때문에
자녀들이 바라는 작은 결혼식이 무산되는 일도 있다.
최근 한 결혼정보 회사가 ‘2024 결혼 비용 보고서’라는 것을 발표했다. 1, 2년차 신혼부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는데
평균 결혼 비용으로 2억 9748만 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주택 가격이 2억 4299만 원을 차지하고 혼수 1564만 원, 예식홀
1283만 원, 예단 758만 원, 신혼여행 725만 원, 예물 673만 원, ‘스드메’ 360만 원, 이바지에 86만 원이 들었다고 한다. 부모의 도움
없이 본인의 능력만으로는 결혼하기가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현재 120여 개 공공시설을 예식장 용도로 개방하고 있는데 공공예식장 확대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또 내년부터 결혼 서비스업체에 가격 표시제를 도입하고 2026년부터 여성가족부가 결혼서비스업 현황과 비용, 소비 피해 사례
등에 대한 실태 조사도 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딸아이와 아들을 작은 결혼식으로 독립시켰다. 사돈들과도 의견이 일치했고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작은 결혼식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터라 별문제 없이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가까운 친척과 신랑 신부의 친구들로 양가 100명씩, 하객을 줄이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다. 자기가 모아 놓은 돈과 우리가 지원해 주는 금액 범위 내에서 최종 결정권을 신랑 신부에게 주니 불필요한 허례허식과
낭비를 줄일 수 있었다. 결혼서비스 업체를 찾을 때마다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을 하면서 흔들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사위와 딸아이의 모습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하지만 좋은 뜻으로 작은 결혼식을 하려고 해도 현실적인 문제점이나 한계, 감내할 것들이 너무 많다. 결국 비용을 절감하지도
못하고 고생만 하고 하객의 불만만 키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결혼서비스 업체의 도움을 받을 건 받으면서도 두 사람이 열심히
발품을 팔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어 무조건 셀프 웨딩만 고집할 일도 아니다.
패키지로 묶어 모든 것을 편리하게 처리해 주는 결혼서비스와는 달리 셀프웨딩이나 스몰웨딩을 진행하면 직접 챙겨야 할 일이
무척 많다. 식당을 빌려 결혼식을 올리려 하면 식대가 너무 비싸고, 출장 뷔페를 부르거나 꽃장식을 직접 하려고 해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 교통이 불편하거나 주차장이 좁고 음식이 부실해서 하객의 불만을 사기도 한다. 야외 결혼식을 고집했다가 비와
바람 때문에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각종 결혼식 소품이나 꽃장식을 직접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결혼식 장소의 약도까지 신랑 신부가 직접 그려야 하는 수고는
생각지도 못한 숙제가 된다. 가전제품을 구매하거나 백화점이나 카드사로부터 신혼부부 할인 혜택을 받으려면 결혼 증빙 서류가
필요하다. 회사로부터 생활안정자금 대출을 받으려 해도 증빙 서류가 필요한데 웨딩홀 계약서가 따로 없으면 그것 또한 난감하다.
작은 결혼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비용이 적게 드는 것도 아니다. 스몰웨딩, 하우스 웨딩이다 해서 오히려 더 사치스러운 결혼식도
많아 부유층의 재력 과시로 눈총을 맞기도 한다. 작은 결혼식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자문해 볼 일이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폐백이나 이바지, 스드메, 퍼얼레 등은 생략하거나 줄일 수 있다. 순간적인 충동이나 유혹에 넘어가 지출하는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을 절약하면 그 돈이 결혼생활 중 얼마나 소중하게 쓸 수 있는 큰돈이 되는지 뼈저리게 절감하는 순간이 온다.
결혼과 결혼식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돌아보며 정작 결혼식 준비보다 결혼 생활을 준비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한다. 결혼식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어 자신만의 뜻깊은 결혼식을 창조하기 위해서 더 이상 흔들리지 말고 중심 잡을 일이다.
한 번뿐인 결혼식이라며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마음만 먹으면 은혼식, 금혼식도 올릴 수 있다. 언제까지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 ‘스드메’나 ‘퍼얼레’에 끌려 다니며 큰돈을 낭비할 것인가?
[출처]데일리임팩트2024/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