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대표인 연출이 전화를 걸었다. 안톤 체호프의 ‘차이카(갈매기)’ 워크숍 공연에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외국 출장과 업무 등이 겹쳐서 신청조차 하지 않았었는데 60대의 쏘린 역을 맡을 남자 배우가 없다며 용기를 주는 바람에 덜컥 승낙해 버리고 말았다. 네 번이나 빠지고 합류했더니 리딩을 마친 후, 대사는 다 암기했다고 전제하고 벌써 동선 짜는 연습부터 하고 있었다.
대다수가 연기 전공한 학생과 졸업생, 그리고 연극배우와 영화배우여서 내가 과연 무대에 함께 설 수 있을까 막막했다. 대사가 조금씩 입에 붙는가 했는데 동선에 신경 쓰면 대사가 꼬이고 대본을 놓고 해 보라니 불안해서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런데 2시간 반이나 되는 1,2,3,4막을 끊지 않고 ‘런’을 돌아보자고 한 날에는 도망치고 싶었다. 런을 도는 것이 뭔지, 런과 리허설의 차이가 뭔지도 몰랐던 나에게 리허설은 또 한 번의 고비였다. 의상과 소품을 다 갖추고 조명과 음향까지 더해 실제로 공연하듯이 하는 리허설은 런과는 완전히 또 다른 위기였다. 내 순서를 까먹고 2막과 4막의 대사를 혼동하고 등장을 너무 빨리 해 버리는 실수를 연발했다. 연극은 ‘집중력’이라는 말이 다시 한번 실감이 났다.
극장 의상실에 없는 의상과 소품을 찾기 위해 소문으로만 들었던 동묘 풍물시장을 뒤졌다. ‘러브 오브 시베리아’라는 영화를 찾아보고 그 시대의 러시아 의상과 분위기를 고려하여 겨우 밀짚모자와 선글라스, 성냥 하나를 건지고 파자마와 슬리퍼, 빵모자는 시장에서 구했다.
일주일에 두 번 연습할 때도 자정이 다 되어 귀가했었는데 공연을 앞두고는 새벽 서너 시에 조간신문과 귀가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두세 시간 선잠을 자고 12시까지 극장에 가서 눈도장을 찍은 뒤, 오후 3시에 리허설을 마치고 7시에 공연하는 첫날에는 완전히 넋이 빠졌다. 감기약을 먹어 가며 그래도 버티고 있는 내가 신기하기만 했다.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설렘과 그 과정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막과 막 사이에 암전된 상태에서 배우들이 다음 장면을 위해 소품과 무대 장치를 바꾸느라 정신을 쏙 빼놓는 ‘전환’ 작업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나이가 많다고 그 수고는 제외해 주었지만, 전환하는 작업까지 나에게 맡겼다면 분명 큰 사고를 냈을 게 틀림없다.
우리 공연의 지도는 배우이기도 한 유영진 연출이 맡아주었다. 내 역할 하나 추스르기도 급급한데 전체 구조와 인물 캐릭터 분석까지 마친 다음, 대사 하나하나, 장면 장면마다 정당성과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무대 장치와 음향, 조명, 의상, 소품까지 챙기면서 앙상블을 만들어내기 위해 애쓰는, 그러면서도 배우들을 끝까지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연출의 태도가 존경스러웠다. ‘머리가 나쁜 사람은 연출이나 연기를 잘할 수 없겠구나, 연극은 과학이구나’를 절감했다. 안톤 체호프 서거 120주년과 극장 개관 10주년을 맞는 해라 계속 본 공연이 있어 워크숍 팀은 극장에서는 연습을 못 하고 연습실을 전전하는 문간방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두 달간의 연습과 리허설, 공연을 통해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캐릭터와 구조 분석 없이 장면 하나하나에 신경 쓰면 배가 산으로 간다, 기술 다 버리고 그 인물이 되어라, 단어나 문장의 분위기에 속지 마라, 스토리를 이미 알고 있지만 처음 듣고 보는 것처럼 연기하라, 설정 연기하지 말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라, 암기한 대사를 읊조리듯이 영혼 없는 연기하지 마라, 상대방 대사를 잘 듣고 리액션하라, 관객이 어떤 사람을 주목할지 모르니 내 대사가 없는 장면에도 끊임없이 내면 독백을 계속하라…. 그리고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연극을 위해 온몸을 던지는 젊은이들을 보며 언제 내가 저렇게 열정을 뜨겁게 불태운 적이 있었나, 부끄러웠다.
연습은 끊임없이 나의 틀을 깨는 작업이었다. 쏘린이 되어 쏘린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데 수시로 학중이가 튀어나오고 충동이 일지도 않는데 앵무새처럼 영혼 없이 대사를 외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에 청바지를 입고 배낭 메고 다니는 나를 노숙자 같다며 놀리던 아내가, 죽을 쑤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생각보단 잘했다고 위로해 주었다. 최악의 경우 다시는 연극 무대에 못 서는 일 말고는 뭐가 있겠느냐, 3월 5일이면 모든 게 끝난다는 똥배짱 때문이었는지, 정작 공연 때는 떨리지 않았다. 팀원들에게 폐 안 끼치고 별 실수 없이 무난하게 마쳤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당분간 무대에 다시 서고 싶지는 않다. 두 달을 온전히 연극 중심으로 살았는데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내 본업에 충실해야겠다. 이제 편하게 연극을 관람하는 쪽을 택하려 한다.
팀원들의 얘기를 통해 들은 연극인들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더 열악했다.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고 했다. 투잡, 쓰리잡,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오디션만 수십 번 보아도 연락이 없으면 가족의 반대 앞에서 결국 무릎을 꿇게 된다고 했다. 연극하려면 결혼하지 말거나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단다. 연극은 배고픈 직업임을 알면서도 그들은 왜 계속 무대에 서는 것일까?
영화나 드라마에 비하면 연극은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매체임이 틀림없다. 흔히 영화와 비교해서 연극은 재미가 없다, 공연장 찾기가 어렵고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비싸다고들 하지만 영화가 죽었다 깨어나도 흉내 낼 수 없는 연극의 매력, 마력 때문에 여전히 그들은 무대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서 감독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이지만 연극은 지극히 일상적인 시선으로 내 눈앞에서 현장을 직접 경험하는 묘미가 있다. 대본을 받고 연습도 없이 바로 촬영에 들어가는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연극은 1년 전 또는 몇 달 전 대본을 받으면 짧게는 2~3개월, 1년 가까이 연습하고 연습하면서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공동 작업이다. 절대적인 시간을 요구하는 예술이다. 연출과 배우뿐만 아니라 수많은 스태프의 손과 발, 눈물과 땀이 어우러져 막이 올라가는 것이다. 하나하나 익히고 다듬고 조율하며 만들어가는 그 과정이 나는 너무나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이걸 과연 무대에 올릴 수 있을까, 관객들에게 이걸 과연 보여줄 수 있을까 싶은데도 음악을 붙이고 효과음이 더해지고 조명까지 합세한 무대에서 배우들이 의상을 갖춰 입고 한마디를 던지면 그럴듯한 작품으로 완성이 되어 있었다.
한 작품을 몇 주일, 몇 달을 공연하지만, 하루도 같은 공연이 없다는 것도 연극의 매력이다. 상대역과의 합이 딱 맞아떨어지는, 출연자들의 호흡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상상도 못 했던 앙상블이 나왔을 때의 희열을 나도 언제 한번 맛볼 수 있을는지....
관객과의 소통도 빼놓을 수 없다. 연습실에서 연습할 때와 극장에서 스태프와 극장 관계자 앞에서 리허설할 때가 달랐다. 그리고 관객 앞에서의 공연도 첫째 날과 둘째 날이 달랐다. 관객이 많다고 호응이 좋은 것도 아니며 적은 관객이라도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진심으로 호응해 줄 때, 그 에너지로 감동이 생기고 그 힘으로 배우들은 다시 무대에 서는 것이다.
저렇게 열심히 연습하고 치열하게 준비하는데 왜 사람들은 상업적인 영화나 뮤지컬, 호객 행위에 끌려 값싼 연극 티켓만 찾는 것일까 안타까웠다. 1년에 한두 번만이라도 연극을 보러 공연장을 찾는다면 그들에게 큰 힘이 되지 않을까. 그들은 연극으로 떼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니다. 돈을 제1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도 아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연극을 하면서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 땅에서 연극을 만들고 앞으로도 연극 무대를 지킬 연극인들을 위해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