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삶의 조건, 가족 >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 가족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행복한 삶을 가족과 떼어서 생각하기가 어렵다. 가족에게 별일이 없어야, 결혼하지 않아도 내가 태어나서 자라온 원가족이 별일이 없어야 행복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별일’이라고 하면 좋은 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거나 억대 연봉을 받는 회사에 취업하거나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일들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많은 가족을 상담하고 가정법원에서 이혼 사건을 조정하다 보면, 가정폭력과 학대, 재산을 둘러싼 소송이나 별거, 외도나 이혼 같은 일만 없어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이들이 왕따나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일 없이 학교에 잘 다닌다면, 부부가 출근할 직장이 있거나 자기 일이 있다면, 부모님이 건강해서 자식들에게 짐이 안 된다면, 그 또한 감사할 일이다. 일과 가족은 따로따로가 아니어서 집안이 편해야 일에 집중할 수가 있고, 직장에서 인정받고 자기 일에 보람을 느껴야 집에 가서도 웃을 수 있다.
불행한 가족은 그 모습이 천차만별이지만 행복한 가족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대화가 되고 말이 통한다는 것이 그 첫 번째다.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거의 없거나 대화한다고 했다가 매번 싸우는 가족이 많다. 대화는 한다고 하는데 소통이 전혀 안 되는 가족도 적지 않다. 어떤 문제든 대화로 풀어나가자는 태도로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조율해 나가는 지혜는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행복한 가족들의 문제해결 능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갈등이나 문제가 없는 가족은 없다. 크고 작은 사건이나 위기 앞에서 서로 싸우며 “니 잘못이니 내 잘못이니, 사니 못 사니” 하면서 가족 해체로까지 치닫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가족이 똘똘 뭉쳐 먼저, 문제부터 해결한 다음 차분히 책임을 묻고 문제를 예방하는 것이 행복한 가족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길 줄 아는 것도 능력이다. 가족이 모이기만 하면 매번 즐거운 것은 아니다. 생일이나 회갑 잔치,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오히려 갈등이 커지고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폭발하는 때도 많다. 그런가 하면 지나치게 일 중심, 친구 중심으로 살거나 지나치게 취미 활동, 종교 활동에 빠져 가족과 얼굴 보기조차 힘든 사람도 많다. 가족여행을 즐겁게 마치고 돌아올 수 있는 가족이라면, 둘이서 함께 즐기는 취미나 운동으로 부부농사에 물주고 거름 주며 한 팀이 되는 부부라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매사에 감사하고, 수시로 사랑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할 줄 아는 행복한 가족의 태도 또한 그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는 자산이다.
행복한 가족을 이루려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돈을 많이 못 벌거나 정리 정돈을 잘 못 해도, 음식 솜씨가 부족하거나 뚱뚱해도, 공부를 좀 못 하거나 행동이 굼떠도, 나와는 다른 배우자와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해 주자. 가족은 대단히 동질적인 집단 같아 보이지만 나이 차나 남녀 차, 성장 환경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대단히 이질적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부모는 자녀를 존중하고 자녀도 부모 세대를 이해하려고 다가간다면 큰 불화는 피할 수 있다. 바꿀 수도 없는 과거나 성격을 바꾸려고, 바꿀 필요도 없는 사소한 취향이나 습관까지도 바꿔 놓겠다고 싸우며 에너지를 낭비한다면 그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는 행복한 가족을 이루는 비결 중의 비결이다.
[출처]월간 HRD 12월호 202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