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재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요양시설에 있는 부모님을 면회조차 할 수 없어 눈물짓던 가족들이 재회의 기쁨을 누린 것도 잠시, 다시 그 악몽 같은 시절로 돌아갈까 봐 걱정이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고 문을 닫는 요양시설과 복지관이 증가한 후, 집에서 가족을 간병해야 하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장수국가이자 우리보다 고령사회를 먼저 맞은 일본에서는 일찍이 간병살인이 사회문제로 부상했었다. 간병살인과 간병자살에 관한 통계를 집계하고 간병보험 제도를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국가적 차원의 공식적인 통계도 없이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2017년,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넘는 고령사회가 된 한국은 2026년이면 그 인구가 20%를 넘기는 초고령사회를 맞게 된다는 전망이다.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의학이 발달하면서 간병을 받아야 하는 인구는 급격하게 늘었다. 전국 지자체에 등록된 발달장애인이 약 25만 명에 달하고 치매 환자는 2024년이면 1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저출산과 핵가족, 1인 가구의 증가로 정작 간병을 할 수 있는 가족은 크게 줄었다.
노쇠한 아내나 남편이 배우자를 간병할 수밖에 없는 노노간병의 심각성을 얘기하지만 간병은 세대와 관계없이 다가오는 복병이다. 믿고 맡길 만한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적당한 시설이 있지만 몇 년을 기다려도 기약조차 없다. 자리가 나도 돈이 없어 집에서 간병하는 사람들은 적금과 보험을 깨고 늘어나는 빚을 대출로 돌려막으며 더 싼 전월세를 찾아 헤맨다.
간병할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요양시설은 믿을 수가 없어서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고 독박간병의 함정에 빠진다. 간병기간이 7년을 넘고 하루 간병 시간이 8시간을 넘으면 함께 죽고 싶고 죽이고 싶은 충동이 커진다는 어느 신문사의 설문 조사 결과가 섬뜩하다. 독박간병, 다중간병은 간병살인을 부르는 방아쇠가 된다. ‘일몰 증후군’에 시달리는 치매 환자가 가족에게 폭언과 욕설을 퍼붓고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지고 흉기로 위협하며 폭행하는 사례도 많다. 외부와 단절된 고립감 속에서 끝이 안 보이는 간병으로 수면 부족에 시달리다 우울증에 빠진다.
치매나 뇌혈관질환 같은 만성질환, 발달장애를 앓는 가족이 있으면 조금도 나아지질 않는 절망감에 무릎을 꿇고 동반자살을 감행하기도 한다. 그런데 간병할 사람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셋이 되면 끝이 안 보이는 터널 속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그들의 가정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간병살인 가해자는 가족 중 남성이 70%를 넘는다고 한다. 돌봄에 서툰 남성들이 도움을 요청할 줄도 모르고 표현도 못 하고 있다가 순간적인 분노를 이기질 못해 사고를 일으키는 것이다. 예민하고 까다로워서 특정 가족 외에는 아무도 손을 못 대게 하고 그 사람이 없으면 먹지도, 씻지도 않으려 하는 환자는 간병하는 사람의 스트레스를 극에 달하게 한다. 더러는 나 좀 죽여 달라고 애원을 해서 목을 조르기도 하는데 오히려 죽이는 게 고통을 줄여주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끔찍한 일을 벌인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내세우는 정책, 선거 때마다 떠드는 공약 중에는 포장만 요란하지, 알맹이가 없는 희망 고문이 많다. 법이나 제도가 있지만 그것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운용이 되는지는 별개이다. 서비스가 있어도 이용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겐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찾아가는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 요양 등급을 받아 실시하는 재택 간병 서비스도 3~4시간에 불과해 24시간 환자 옆을 떠날 수 없는 가족에겐 언 발에 오줌 누기이다.
무엇보다 간병하는 가족이 한계에 부닥쳤을 때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 급선무다. 반나절이나 하루 이틀, 야간에도 극단적인 상황에 몰렸을 때 받아줄 수 있는 시설과 서비스를 더 많이 늘려야 한다. 병 간호를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금전적, 시간적, 신체적으로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가족회의를 열고 교육 프로그램과 자조 모임을 통해 실질적인 정보도 얻고 주위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가족의 태도도 필요하다.
그러나 가족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은 기업과 지역사회, 국가가 책임져 주는 시스템이 뿌리내리지 않으면 누군가가 죽어야만 끝나는 이 전쟁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일과 돈, 일상과 관계, 웃음과 여유, 희망을 잃어버린 그들이 몸과 마음으로 비명을 지를 때,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진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둘도 없는 잉꼬부부였고 헌신적인 부모였으며 효녀, 효자였던 사람들이 살인자로 추락하는 끔찍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단 몇 시간만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도록 내 시간을 나눠 주고 차 한 잔, 밥 한 끼를 함께 하면서 당신 옆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간병은 닥치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족만 끝까지 책임져야만 하는 십자가도 아니다. 돌봄의 사회화, 간병의 사회화를 통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간병살인은 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혼자 남을 가족을 생각하고, 자식에게까지 가혹한 짐을 물려줄 수가 없어 최후의 수단을 택한 그들을 살인자라고 비난하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지역사회가 해야 할 일부터 챙기자.
출처 : 데일리임팩트(https://www.dailyimpac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