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가 발표한 ‘2021 위기청소년 지원기관 이용자 생활실태 조사’ 결과를 보니 제대로 기능을 못 하는 가족과 역기능적인 가족들이 눈에 선했다. 청소년 쉼터와 청소년 자립 지원관을 이용한 청소년의 72.1%가 신체 폭력을, 72.9%가 언어폭력을 경험했다는 기사였다. 가출 원인 중 가족과의 갈등이 70.6%, 폭력이 49.4%였다. 자해나 자살을 시도한 청소년 중에는 가족 간 갈등을 주요인으로 꼽은 비율이 45.2%, 학대는 59.2%나 되었다.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응답한 청소년이 11%나 된다는 슬픈 통계가 우리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최소한의
안전망이나 보호망은커녕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만 안겨 주는, 원수 같은 가족이고 지옥 같은 가정인 셈이다.
세탁기나 냉장고, 진공청소기에는 저마다의 기능이 있다. 자주 청소해 주고 제때 필터를 교체하고 냉매를 보충해 주어야지, 관리를
게을리하면 제 기능을 못 하고 고장이 난다. 자동차도 정기적으로 엔진 오일을 교환하고 타이어 공기도 확인하고 제때 연료를 보충해 주어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 배터리가 방전되거나 냉각수가 떨어지고 와이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도 낭패를 보기 쉽다. 브레이크가 제 기능을 못 하거나 고속도로에서 타이어 펑크라도 나면 끔찍한 참사가 일어난다.
우리가 사는 집도 마찬가지다. 새집에 입주하여 살더라도 전구를 갈고 막힌 싱크대나 변기를 뚫고 언 수도도 녹이고 칠도 다시
하고 도배도 다시 해 주어야 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비가 새고 배관이 터지고 누전이 되거나 집에 균열이 생기면 큰 재난으로 이어진다.
시대나 사회 제도가 변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고 있고, 학자들마다 강조하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가족에도 주요한 기능이 있다.
부부의 성적 욕구 충족과 애정의 기능, 자녀 출산의 기능, 자녀 양육 및 사회화의 기능, 교육적 기능, 경제적 기능, 정서적 안정 및 휴식, 오락의 기능, 사회적 지위 부여의 기능, 보호 기능, 종교적 기능 등이다. 산업화, 도시화하고 복지 제도가 강화되면서 학교나 병원, 종교 기관 등이 일부 기능을 대신하기도 하고, 축소되는 가족 기능도 있다. 그런가 하면 극심한 사회 경쟁 속에서 애정의 기능과 휴식의 기능은 더욱 중요해졌다. 경제적 기능은 생산 기능과 소비 기능으로 나눌 수 있는데 현대에 와서는 생산 기능은 줄고 소비 기능이 크게 확대되었다.
하지만 스트레스나 갈등, 위기 등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가족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역기능적인 가족으로
전락한다, 완전히 고립된 개체로 남처럼 사는 가족, 지나치게 밀착되어 개인의 권리나 삶이 무시되는 가족, 세대 간의 분열로 부모와 자녀 간의 상호작용이 전혀 없는 가족, 성별에 따라 가족이 분열하여 아버지와 아들이 동맹을 맺고 어머니는 딸과 동맹을 맺은 가족, 가족 중 한 사람이 완벽하게 군림하는 가족,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언급조차 하지 않는 가족, 가족의 감정을 뒤에서 조종하는, ‘말 없는 독재자 가족’ 등이 역기능적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라고 할 수 있는 가족이 건강해야 질서가 유지되고 사회가 안정된다. 그런데 역기능적인 가족은 음주, 흡연,
약물 중독에 빠지거나 가출 후, 범죄를 저지르고 성매매하는 비행 청소년을 만들어 낸다. 신체적인 질병을 앓거나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기도 하고 부모와 자식 간의 위계가 무너진다. 별거나 이혼 등으로 가족이 위기를 맞고 가정폭력과 학대, 존속살인과 같은 끔찍한 범죄를 낳기도 한다.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하고 아무도 간섭하거나 개입할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이웃의 가족 문제를
방치하면 타인의 가족 문제는 사회문제가 되고 국가의 위기로 이어져 결국 내 문제로 돌아온다. 예산과 인력 부족이라는 핑계로 문제가 터지면 부랴부랴 급한 불만 끄고 가족 문제를 미리미리 예방하지 않으면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하는 이유다.
행복하고 건강한 가족은 몇 가지 특성이 있다. 감사와 애정을 자주 표현하는 가족, 말이 통하고 소통이 잘 되는 가족, 함께하는
시간이 많고 그 시간을 즐길 줄 아는 가족, 문제가 생기면 원망과 비난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부터 해결하는 가족, 가족이 자신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요구하기보다 내가 먼저 배려하고 헌신하는 가족, 공동의 믿음이 있는 가족이 건강한 가족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이 함께하는 ‘가정의 달’ 5월이라고 카드와 꽃다발을 선물하고 외식도 하면서 가족의 중요성을
유난히 강조하지만, 정작 우리 가족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일이다. 부족한 것은 채우고 강점은 더욱 살리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듬뿍 저축해 두는 것이 행복한 가족을 만드는 비결임을 잊지 말자.
출처 : 데일리임팩트(https://www.dailyimpact.co.kr) 2022/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