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의 MBTI가 공개되고 ‘유형별 투표할 때의 특징’이라는 게 인터넷에 떠돌았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연예인들의 MBTI를 밝히며 시청률을 높이려 애를 쓰고 있다. MBTI 소개팅 앱이 성행하고 유형별 재회 방법이라는 것까지 등장했다. MBTI는 기업의 마케팅 도구로도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는데 투자유형 분석, 여행지 추천, 뷰티 MBTI라는 게 뜨더니 모 카드사에서는 소비 특성을 알려주는 ‘소BTI’라는 것까지 개발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예능 농구 프로그램에 출전한 연예인들의 MBTI를 코칭전략 수립에까지 활용한다니 가히 MBTI 전성시대가 아닌가 한다.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미국의 마이어스와 브릭스라는 모녀가 개발한 성격유형 검사의 하나로, 사람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한때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구분 짓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렇게 MBTI 전성시대를 이루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자기과시적 SNS 트렌드가 유행을 이끌고 있고 인터넷 콘텐츠 앞에 MBTI를 앞세우면 조회 수가 늘어난다는 것을 눈치 챈 상업주의의 공도 크다. 손쉽게 이용할 수 있음을 내세우며 저작권을 피해서 만든 인터넷 간이 무료 검사, 코로나 19로 인한 비대면 문화 또한 붐을 부추기고 있다.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타인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인간 심리가 바탕에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MBTI의 장점이나 순기능이 없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재미있고,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의 서먹서먹함을 해소해 주는 소통 수단이 되기도 한다. 나와는 매우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자신도 이해가 안 되는 자기 성격 때문에 고민하던 사람에게는 나만 이상한 사람이나 비정상이 아니라는 안도감도 선물한다. MBTI를 처음 접하고, 자신과 너무나 같은 사람을 발견했을 때의 그 놀라움과 묘한 연대감까지 무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MBTI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80억에 가까운 인구를 그리 쉽게 유형화할 수도 없으며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자기 보고식의 검사여서 기분이나 상황, 직업, 생애 시기에 따라 검사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오기도 하고 같은 유형이라도 매우 다른 사람도 많다. 신뢰도나 타당도에도 문제가 많다고 끊임없이 비판을 받아 온 검사이다.
누구에게나 해당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검사 결과를 놓고도 마치 자신의 성격을 요약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믿어버리는 경향을
‘바넘 효과’라고 한다. 1940년대 말, 동일한 성격 검사 결과지를 나눠주었는데도 80% 가까운 학생들이 자신의 성격과 일치한다고 응답한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의 실험이 바넘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혈액형, 타로점, 토정비결, 오늘의 운세 등이 그 예라고 하겠다. 게다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사실까지, 자신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의견이나 정보면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사랑이나 이별을 노래한 유행가 가사가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을 족집게처럼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신기했던 경험이 한두 번 있을 터인데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이다.
MBTI를 무턱대고 맹신하거나 악용하면 부작용이 커진다. 선입견이라는 틀에 타인을 가두고 단정 짓거나 매도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개선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난 본래 그런 사람’이라고 포기해 버리는 것 또한 자신의 발전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최근 채용 과정에 MBTI를 이용하고 있는 몇몇 기업은 능력이 아니라 한 개인의 성향으로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옳으냐는 저항에 부닥치고 있다. 의무적으로 검사 결과를 제출하게 하고 심지어는 특정 유형을 뽑지 않거나 응시 자체를 막는 기업이 있어 법적인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정 유형은 어떤 일을 못 한다는 전제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직업이나 사회적으로 요구받는 유형으로 거짓 응답을 해도
가려낼 뾰족한 방법이 없다. 결혼 전 궁합의 일환으로 MBTI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는데 상대방과 헤어질 목적이 아니라면 그 또한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혈액형이 B형인 남자들이 자신의 혈액형을 밝히길 꺼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꼬리표 붙이기나 과도한 유형화, 성격의 스펙화는 모두 다 우려스럽다.
어느 정도의 효용 가치가 있고 재미있는, 타인과 교류하는 놀이 기구 정도로 이용하는 것은 좋지만 비전문가가 해석한 결과를
맹신하고 악용하거나 MBTI를 모른다고 무식한 사람 취급하는 것은 성숙한 태도가 아니다. 내 마음을 비춰보고 다양한 타인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자기객관화가 어렵고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 기반이 취약할 때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상업주의와 영혼의 약탈자를 경계해야 한다. 오늘이라는 현실의 벽돌을 하나하나 성실하게 쌓아나가다 보면 탄탄한 기초를 세울 수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잠재울 수 있다. 성격론이나 운명론에 휘둘리지 말고 변화의 원동력과 출발점은 나 자신임을 잊지 말자.
출처 : 데일리임팩트(http://www.dailyimpact.co.kr)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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