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한 환경 속에서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는 심리적 공간을 ‘안전지대’라고 한다. 인간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존재로, 친숙함을
갈망하며 분위기나 상황에 익숙할수록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더 잘 알기에 안전지대에 머물 때는 자신감이 생기고 스트레스와
불안지수도 낮아진다. 사람마다 안전지대는 다 다른데, 사는 지역일 수도 있고 직업이나 인간관계일 수도 있으며 생활 습관이나
갖가지 믿음일 수도 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며 펼쳐내는 감동적인 인간 승리를 시청하면서 난 안전지대에 너무
오랫동안 안주한 건 아닌가 반성했다. 치열하게, 정말 열심히 일했던 20대~40대 초반의 반작용이었을까, 40대에 내 삶의 방향을
180도로 바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한 용기였다. 하지만 제2의 삶에 성공적으로 연착륙한 뒤론 제1의 핵심 가치를 ‘마음의
평화’에 두면서 지나치게 축소 지향적으로 살았던 게 아닌가 싶다. 내 삶의 속도를 내가 조절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자부심으로 보낸 지난 20년이 나태와 안일은 아니었는지....
자신만의 안전지대를 가지는 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안전지대에 끌리는 것은 인간 본성의 일부이다. 문제는 안전지대를
대하는 태도이다. 편안하고 정적인 상태에 너무 오래 안주하다 보면 목표나 목적도 없이, 새로운 시도나 노력도 하지 않고 한계에
도전하는 일은 엄두도 못 내며 현재 상황에 만족해버리고 만다. 그 결과, 좋은 기회를 놓치고 새로운 재능이나 잠재력을
사장시킨다.
안전지대에 안주하는 사람들은 매사를 미루는 경향이 있다. 구상하고 계획만 하면서 정작 행동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계획은
실행이 아니다. 지나친 계획은 그 자체가 일종의 안전지대로서, 목표를 향해 생산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착각이나 합리화라는
함정에 빠지게 한다.
안전지대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안전지대는 안전을 위한 곳이 아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피난처이다. 미루기가 습관인 사람들은 완벽주의와 손을 잡기도 한다. 하지만 완벽주의는 타인의 기대에 얽매여, 아무에게도
비난받지 않는 안전한 곳에 머물기를 선택하는 행위로 자기학대가 될 수도 있다.
인도양의 모리셔스에 서식하던 도도새는 천적이 없는 안전한 환경 속에서 날 필요가 없게 되자 날개가 퇴화되어 종국에는 날
수가 없게 되었다. 15세기에 모리셔스 섬을 발견한 포르투갈인에게 남획되어 바보, 멍청이라는 뜻의 ‘도도새’라는 이름만 남기고
결국 멸종되었다. 도도새를 보면 자기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그저 편하게만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날개를 잃어버린
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 몸이 쇠약해지고 아픈 곳이 많아지며 지적 능력이나 기억력이 떨어진다. 과거지향적인 일상에 묻혀 변화를 싫어하고
도전할 줄 모르며 매사에 조심스럽고 신중해지고 내향성이 증가하는 노년기의 성격 특성이 나타난다. 하지만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계속 도전하는 어모털(amortal)족이나 액티브 시니어들도 많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은 노화된 신체가 아니며 노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마음가짐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훨씬 나이 어린 배우자와 결혼한 사람들이 평균수명보다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고령 출산이
건강에 나쁘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늦은 나이에 출산한 엄마들이 일찍 출산한 엄마보다 평균수명이 더 길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되었다. 위 연구결과들은 스스로 ‘사회적 시계’를 어느 집단에 맞추느냐가 수명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면서 나이답게 늙는 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을 나이의 감옥에 가둔 채 모든 것을
‘이 나이에 무슨?’이라고 지레 포기하고 회피하면서 노인처럼 살 필요는 없다. 호기심을 일깨우고 가슴 설레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80, 90이 되고 100살이 가까워졌을 때 후회하게 된다. 이제 익숙한 것들과 이별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연습을 시작할 때이다. 익숙한 것들과 이별하지 않고는 결코 변화할 수 없다.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할 때, 하지 못할 이유
열 가지를 궁리하는 대신 그것을 해야 하는 한두 가지 이유를 먼저 떠올려 보는 습관도 필요하다.
불가능하다고 증명될 때까지는 모든 것이 가능한 법이다. 시도조차 하지 않고 지레 포기하지는 말자.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도 없다. ‘이상한 사람’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도 관대해졌으며 ‘남다름’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개성이나 자산이 될 수도 있다. 정말 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핑계로 못 한 일이 있다면 지금 당장 실행해 보자. 그것이야말로
안전지대를 탈출하는 비결이고 20년 후, 30년 뒤의 후회를 예방하는 지름길이다. 배움, 발견과 깨달음, 기쁨과 즐거움,
성취와 성장, 실현, 보람 등 가치 있는 많은 것들은 안전지대 밖에 존재한다.
출처 : 데일리임팩트(http://www.dailyimpact.co.kr) 2022/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