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주의자들의 동영상을 검색하면서 내가 꽤 열려 있는 사고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알았다. 세상의 편견은 참 모질고 끈질겨서 결혼을 안 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불효라며 몰아붙이고 동거는 철없는 애들의 무책임한 방종이라고 성적인 낙인을 찍어버린다.
당장 취업이 안 되고 살 집이 마련되지 않은 젊은이들은 언감생심 결혼은 꿈도 못 꾼다. 연애마저도 사치인 그들에게 출산은 끊임없는 비용 지출의 늪일 뿐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더라도 맞벌이 부부, 그것도 아이를 봐줄 만한 양가 부모님이 안 계시거나 지방에 계시는 경우, 아이 맡기는 비용이 월급에 버금간다. 시대와 국가를 불문하고 출산율이 세계 최저라고 해도 아이를 낳을 엄두가 안 난다.
굳이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도 젊은이들에게 결혼은 이제 매력적인 삶의 방식이 아니다. 결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젊고 능력 있는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 중에도 위험이 너무 크고 자기 삶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제도적인 결혼보다 연애만 하겠다는 사람이 많다.
2014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생활동반자법을 마련했다가 발의조차 못 하고 좌초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올해 여성가족부가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안을 발표하면서 법적인 가족 개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기본소득당 대선 주자도 생활동반자 제도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일부 계층의 의견이라고 외면하지 말고 이제 생활동반자법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논의할 때다. 생활동반자법이란 혈연, 혼인
관계로 맺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 돌보고 살아가자고 합의한 다음, 그 관계를 국가에 등록하면 가족에게 부여하는 제도상의 권리를 부여하는 법이다. 그러나 동성애와 동거를 조장하고 가족 해체를 부추기는 법이라며 보수 단체와 종교계가 극심하게 반대해서 논의조차 제대로 못 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2005년, 호주제를 폐지한 뒤에도 큰 혼란이 없었던 점을 생각하면 동성애 이슈만 부각해서 대화의 물꼬조차 막아버린 처사는 안타까운 일이다.
법률혼의 테두리를 벗어난 사람들이 겪는 차별은 한둘이 아니다. 십수 년을 함께 사는 사이여도 수술동의서에 사인할 수 없으며
임대주택이나 아파트 청약은 그림의 떡이다. 각종 보험금이나 산재 등의 보상금, 연금 수령도 어렵고 결혼, 출산과 육아, 장례와 관련된 휴가도 누릴 수 없다. 직장에서의 각종 혜택도 기혼 부부 중심으로 짜여 있다. 각종 상황에서 개별 법이 요구하는 가족 증빙 서류를 제출하는 것도 고역이다. 연말 정산 소득 공제도 받을 수 없고 통신사의 가족 할인에서도 제외된다. 건강보험에 부양가족으로 올릴 수도 없다.
중년 독신, 노인 커플, 같이 사는 비혼 형제자매, 서로 기대고 돌보면서 함께 사는 친구, 셰어하우스에서 가족처럼 사는 사람들,
보호 시설에서 나와 독립한 청소년, 위탁 가정, 월세를 아끼려는 룸메이트, 성 소수자 등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가족들이 너무 많다. 이제 실질적인 생계와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라면 다양한 형태의 생활공동체를 사회적인 기본 단위로 인정해 주고 인구, 고용, 주거, 의료 정책과 연결된 가족 정책을 수립할 때다.
코로나 19로 사회적 돌봄 망이 약해지면서 원하는 사람과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가족구성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존의 법과 제도가 다 끌어안지 못해 이름조차 붙이지 못하고 있는 관계가 참 많고 다양해졌다. 막대한 국가 예산과 인력으로도 한계에 부닥친 돌봄과 친밀감을 서로 나누고 경제적인 부양을 자원해서 하겠다는 소중한 자산에게 국가가 최소한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결혼 중심의 복지 제도를 개인 중심으로 전환하여 다양한 삶의 방식이 공존할 수 있도록 국가가 그 토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위해서는 민법과 건강가정기본법을 개정하고 현행 240여 개 법에서 언급하고 있는 가족을 일일이
재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추가로 들어갈 예산과 부작용도 광범위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육과 언론의 역할을 통해 가족 다양성에 대한 수용성도 높여야 한다.
2020년, 여성가족부가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69.7%가 ‘혼인,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거주하고 생계를 공유하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응답했다. 프랑스는 1999년 PACS(팍스:시민연대계약)를 도입하여 동거하는 사람에게도 법적인 부부에게 주어지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한 결과, 작년 유럽에서 가장 높은 합계출산율 1.96을 기록했다. 느슨한 가족 결합 제도가 출산율을 높인, 좋은 예이다.
동성 결혼까지 허용하는 것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면 이성애 동거부터 허용하여 결혼제도와 생활동반자법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꾸려가는 모든 사람이 그것 때문에 최소한 차별받지 않는 세상, 외롭지 않을 권리와, 함께 사는 즐거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나갈 때이다. 내가 좀 더 노력하고,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사회복지 시스템이 많아진다면 이 혹독한 코로나 사태도 이겨낼 힘이 솟아나지 않을까?
출처 : 데일리임팩트(http://www.dailyimpact.co.kr)2021/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