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둔 요즘 정치판은 믿을 수가 없다. 자신이 한 말을 유·불리에 따라 어쩌면 저렇게 뻔뻔하게 뒤집을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정치인은 그렇다 치고 언론도 믿을 수가 없다. 통계도 못 믿겠고 여론조사도 수상하다. 검찰도 신뢰가 안 가고 사법부도 점점 믿기 어렵다.
한때 윤리경영, 정도경영, 신뢰경영이 새로운 경영기법으로 주목받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윤리경영, 신뢰경영 없이는
기업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투명경영, 믿음 경영이라고도 하는 신뢰경영은 직원들의 사기와 조직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고 이직률을 낮추며비용을 대폭 절감하여 경영 실적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업경쟁력의 뿌리이다.
신뢰라는 뜻의 영어 단어 trust는 편안함을 의미하는 독일어의 trost가 어원이라고 하는데, 누군가를 믿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를 배신하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배신을 예방하기 위한 시간과 노력 또한 절약할 수 있다. 국민의 신뢰 수준은 한 나라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일본, 독일 같은 고신뢰 사회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정직이란 덕목이 가장 천대받는 나라가 아닌가 한다. 심지어 어떤 부모는 자녀들에게 곧이곧대로 살면 쪽박 차니 적당히 둘러대라고, 남들 다 하는 거짓말, 너도 해도 된다고 가르친다니 혀를 찰 일이다.
그러나 신뢰는 기업경영에만 필요한 덕목이 아니라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데에도 필수 조건이다. 부모가 자녀를 믿지 못해서
지갑이나 서랍에 돈을 못 둔다고 생각해 보자. 남편의 외도를 의심해서 아내가 남편의 휴대전화를 훔쳐보고, 아내가 생활비를 어떻게 쓰는지 못 미더워 일일이 영수증을 첨부한 보고서를 요구한다고 상상해 보자. 아내 몰래 재산을 빼돌린 뒤 이혼하자고 소송을 거는 남편이나 보험금을 노려 술에 취해 잠든 남편을 살해하는 아내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가족 간의 신뢰를 이용해서 자녀나 조카를 성폭행하는 악마들의 성범죄는 또 어떤가?
부부 사이의 신뢰에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는 것은 외도라고 할 수 있는데 돈이나 거짓말, 무책임한 태도, 무시 등도
배우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남몰래 한 주식 투자나 도박으로 빚을 지거나 사기를 당한 경우, 보증을 잘못 섰다가 집을 날리거나 친정 또는 본가로 돈을 퍼 나르는 행동 또한 신뢰에 상처를 남긴다. 사소한 거짓말도 계속 반복되면 배우자가 어떤 말을 해도 신뢰가 안 가는 법이다.
사랑 없이도 부부는 그럭저럭 살 수 있지만 신뢰가 무너지면 결혼생활을 지속하기가 어렵다. 무너진 신뢰를 어렵게 복구했는데 그 믿음이 또 한 번 무너지면 가족이 해체되기도 한다. 설사 이혼까지는 할 수 없어 하루 이틀 버텨보지만 한 번 구겨져 버린
종이를 다시 반듯하게 펴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부부는 신뢰가 깨질 수밖에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나와 특별히 이해관계가 없는 사이에는 신뢰에 손상 갈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부부는 한 지붕 밑에서 자고 먹으며 함께 지내는 관계이다 보니 부닥칠 일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 어찌 믿음에 손상이 가고 깨지는 일이 없겠는가. 마라톤을 하면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신뢰는 깨지기 전에 예방해야 한다. 실망스럽고 배신감을 느끼는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서로의 신뢰 통장 잔액이 마이너스가
되지 않도록 미리미리 조금씩 신뢰를 저축해 둔다면 파국은 면할 수 있다. 예방 못지않게 더 중요한 것은 위기가 닥치더라도 신뢰를 지혜롭게 회복할 줄 아는 성숙함과 인내이다. 신뢰에 금이 가게 한 사람은 변명하지 말고 진심으로 사과부터 해야 한다. 변명하기에 급급해서 배우자의 감정이 어떤지를 짐작조차 못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배우자의 악다구니와 비난, 원망을 받아내고 경청하면서 배우자의 감정을 읽고 공감해 주는 것이 먼저다, 그런 다음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팔 수도 없고 살 수도 없으며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고 도 할 수 있는 신뢰는 부부 사이를 이어주는
생명줄이다. 신뢰 없이 성공하는 인간관계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신뢰가 없는 부부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이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도 경영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20여 년간 주장해 왔지만, 가정경영에도 신뢰경영이 기본 중의 기본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출처 : 데일리임팩트(http://www.dailyimpact.co.kr)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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