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인 50대 아내는 더 못 살겠다고 했다. 여전히 술 마시고 바람피우고 집안 살림은 나 몰라라 하는 남편과 지금까진 참고 살았지만, 이제는 폭력까지 행사하니 더 참을 수가 없다며 눈물을 훔쳤다. 피고인 남편은 펄펄 뛰었다. “바람피우고 아내를 폭행한다는 얘기는 재산 때문에 지어낸 거짓말이다, 이혼소송이라니 말도 안 된다”며 고함을 질렀다.
조정을 더 진행하기가 어려워 부부의 진술을 따로 들었다. 아내는 아이들이 결혼도 안 한 마당에 끝까지 이혼을 고집할
생각은 없지만, 남편이 변하지 않으면 이혼할 수밖에 없다고 버텼다. 남편은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뼈 빠지게 고생했는데 바람이라니, 말도 안 된다. 뺨 한 대 때린 것을 가정폭력범으로 몰아가는 것도 다 재산 분할을 노린 소행이다. 소송을 취하하지 않으면 물러설 수 없다”고 흥분했다. 한 달 뒤 조정을 속행했지만, 아내는 출석조차 하지 않았다.
가정법원에서 조정을 하다 보면 안타까운 부부를 참 많이 본다. 저 원수에게 복수만 할 수 있으면 내가 망가져도 좋다며
분노와 적개심을 불태우는 부부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당사자만큼 고민하고 또 숙고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울분을 토하지만 충동적인 이혼도 있다. 앞뒤 생각해 보지도 않고 불이 난 고층건물에서 무작정 뛰어내리는 사람들이라고 할까? 아니면 어디로 가야 할 건지 생각도 해 보지 않고 무작정 교도소를 탈출한 뒤 우왕좌왕하는 죄수에 비유할 수 있을지.
절대 이혼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요즘은 판사나 조정위원들조차 무조건 이혼을 말리지는 않는다. 결혼생활이 가망이
없을 정도로 파탄이 났다고 판단되면 이혼을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습적인 폭력이나 학대, 대놓고 하는 외도, 심각한 인격적 장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부부의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꼭 이혼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혼한 당사자도 경제적, 심리적, 사회적인 문제로 고통에 시달리지만, 부모의 일방적인 이혼으로 가장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은 자녀들이다. 이혼은 평생 가는 상처와 고통의 씨앗을 자녀 가슴에 심는 일이며 그 상처의 깊이는 아무도 모른다. 심장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고통에 신음하는 자녀를 생각한다면 이혼은 최후의 선택이어야 한다. 이혼 후 부닥칠 문제에 대해서 깊이 고민도 안 해 보았거나 왠지 후회할 것 같은 이혼이라면, 이혼 의사를 도중에 철회하는 것도 용기이다.
홧김에 “이혼해”, “그래, 니가 이혼하자고 하면 내가 못 할 줄 알고?”, “그래, 갈라서”, “그래애~ 찢어져~”라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더라도 내가 먼저 손 내밀어 사과하고 화해를 시도하는 것으로 파국을 피할 수 있다. 내가 먼저 이혼하자고 해놓고 그 말을 주워 담는 짓은 도저히 못 하겠다고 고집부리지 말고, 눈 한 번 질끈 감고 내 생각이 짧았음을 시인하면 뻔히 보이는 불행을 막을 수 있다.
법원에서 지원하는 가족 캠프나 부부 상담 또는 조정을 통해 이혼 아닌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혼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법원이 출석을 요구해도 사유를 들어 연기하거나 출석하지 않을 수도 있고, 출석한 뒤에는 판사 앞에서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부인해도 이혼은 성립되지 않는다. 설사 협의이혼 의사 확인서 등본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3개월 이내에 시군구청이나 면사무소에 제출하지 않으면 된다. 배우자가 신고하기 전에 이혼 의사 철회신청서를 내가 먼저 제출해도 이혼을 피할 수 있다. 물론 그런 구차스러운 방법 이전에 그 지경까지는 안 갈 수 있도록 미리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평균수명이 길어지면 이혼할 확률은 더 높아진다. 코로나 19로 살기가 팍팍하고 여름철 장마로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요즈음,
이혼하고 싶은 충동이 하루에도 수십 번 고개를 내밀 수 있다. 이혼만 하면 지긋지긋한 이 지옥에서 탈출할 것 같은, 달콤한 함정에 빠져 이혼 직전까지 갔다 온 부부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잘 안 풀리는 것이 다 내 남편, 내 아내 때문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배우자에 대한 미움이나 답답함까지 성격 차이를 내세워 너무 쉽게 이혼으로 풀려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부부가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는 진짜 이유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결혼생활은 지켜나갈
가치가 있다. 나에게는 고약한 배우자이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 좋은 엄마라면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살아낼 가치가 있다.
이 세상에 이혼 안 하고 사는 부부가 다 화목한 것은 아니다. 돈이나 그놈의 정 때문에, 자식 때문에 사는 사람도 많다. 심리적 안정이나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종교적인 이유나 성적인 욕구, 가족의 반대나 타인의 시선 등 수많은 이유로 참고 사는 것이다.
이혼한 사람은 반드시 불행해진다는 연구 결과는 단 한 건도 없다. 하지만 이혼하면 행복해진다는 보장도 없다. 자존심 내세우고 허세 부리면서 초라하고 피폐한 노후의 길로 들어서지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리고 내 사전에서 ‘이혼’이라는 단어를 먼저 삭제해 보는 것은 어떨까?
출처 : 미디어SR(http://www.mediasr.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