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아름다운 거리두기
내 일의 주제가 ‘부부’와 ‘가족’인지라 주례를 참 많이 섰다. 40대 초반에 시작해서 회사 직원, 제자, 친구와 지인의 아들딸, 그중에서도 남매 세 쌍과, 나와 열 살 정도밖에 차이나지 않는 건축가 Y대표의 결혼식까지 사연도 많다. 하지만 TV프로그램에서 마련한 재혼 부부의 결혼식과 그때 고3이었던 딸이 장성하여 치른 결혼식까지 부녀의 주례를 연이어 맡은, 특별한 인연은 잊을 수 없다. 결혼식 전에 신랑 신부를 꼭 만나보고 두 사람을 위한 맞춤 주례사를 준비한다. 양가 부모에게도 지금, 이 순간부터 아들딸을 남이라고 생각하고 두 분이 즐겁게 사는 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결혼했다고 어떻게 남이 되느냐”며 펄쩍 뛰는 부모도 있다. 하지만 ‘이젠 남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부모 자녀 관계를 재정립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간섭하고 잔소리를 하게 되어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염려에서 하는 말이다. 부모는 ‘자식들을 위해서 하는 말’이고,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지만 자녀들 입장에서는 잔소리나 간섭으로 들리기
마련이다. 우리 아들 아침밥은 챙기는지, 애들은 잘 키우는지. 집 안 청소와 냉장고 정리는 잘하고 사는지, 술 먹고 늦게 들어가 우리 딸 속 썩이지는 않는지, 시시콜콜 참견하자면 끝이 없다. 존중하고 믿고 지켜보면서 자녀들 삶을 지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내가 키운 자식은 베푼 것이 있고 함께한 세월이 있기 때문에 서운한 소리도 소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결혼으로
맺어진 며느리나 사위에게는 질책이 오래도록 상처만 남길 수 있어 웬만하면 꿀꺽 삼키는 편이 낫다. 내 아들딸이지만 결혼해서 한 가정을 이루면 누군가의 남편이나 아내요, 사위이자 며느리이며 또 누군가의 아빠나 엄마임을
잊지 말자. 모두 다 내려놓고 자신의 노후부터 먼저 챙기는 것이 현명한 길이다. 자녀들 또한 하루빨리 심리적,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하여 부모에게 의존하고 기대지 말고 바로 서야 진정한 어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부모와 자녀 모두가 제대로 독립해야 하며 부모부터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먼저 되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적절하게 교류하고 왕래하며 즐거운 시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나간다면 웃음꽃이 필 것이다. 그런데 결혼한 자녀들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여전히 조종하고 경쟁시키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부모에게 여전히 손 벌리며 부모의
노후를 위협하는 캥거루족도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도 사위와 며느리를 보고 두 손녀의 할아버지가 된 후, 아내와 참 많은 얘기를 나눈다. 아이들 삶에 대해 되도록 간섭하지
말고 부담 주지 말고 우리 둘이 즐겁고 건강하게 살자는 결의를 다진다. 아이들이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손녀 보고 싶다며 우리가 먼저 찾아가는 일은 거의 없다. 매일 사진을 보내 주고 영상통화를 하고 있어서 손녀 바보가 될 일도 없다. 친정이 부산인 며느리에게는 명절 때 늘 친정 먼저 다녀오라고 양보하고, 딸에게는 거꾸로 시댁 먼저 챙기라며 조율을 한다. 명절 음식 만드느라 서로 고생하지 말라고 외식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더 많이 가지려 애쓴다. 단체 카톡방에도 되도록 무언가를 덜 올려 사위나 며느리가 댓글을 달지 않으면 눈치가 보이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쓰는 편이다.
딸과 며느리도 손녀들 어릴 때부터 자기 아이는 자기가 키우는 거라는 생각이 확고해서 우리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거나 어린이집이 방학을 맞으면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자고 가기도 하지만 아이 봐 달라고 힘들게 하는 일은 없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한 가정을 이루고 경제적으로도 독립해서 더욱 감사하다. 만나면 반갑고 모이면
즐거운 기억, 아름다운 추억을 쌓을 일만 남았다. 내 자식이지만 한 사람의 성인으로 존중해 주고 며느리와 사위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임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장성한 자녀들과 부모와의 ‘아름다운 거리’는 얼마일까? 30km? 900m? 정해진 거리가 따로 있거나 한 가지 정답만 존재하는 건 아닐 것이다. 가족문화에 따라서, 나이나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융통성 있게 그 거리를 조절해야겠지만 서로 짐 되지 않고 그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부모 자녀 사이가 정답이 아닐까.
강학중 가정경영연구 소장˙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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