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제 강학중
네 번째 녹화인데도 출연자들의 ‘파란만장’한 얘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이번 주제가 ‘가슴에 묻은 내 자식’이어서 더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건 모두 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자식의 죽음은 사지가 잘리는 아픔으로 비유될 만큼 끔찍하다. 16살 된 아들을 시설에 맡긴 아버지가 첫 출연자였다. 아들은 태어난 지 일 년 만에 뇌 질환을 앓았다. 삼시 세끼를 일일이 떠먹이고 대소변을 받아내며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아들을 24시간 병간호하는 일은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 아들이 29살 되던 해, 추락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았다. 아버지는 고심 끝에 장기 기증을 약속했다. 7명의 생명을 살려내고 조직 기증으로 100여 명의 삶에 희망의 등불을 밝혔다.2년이 지나 이제는 TV에 나와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얘기를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염려스러웠다. 아들의 생일과 기일을 맞거나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을 접하는 순간,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압도되는 때가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죽은 지 30년이 지난 아들의 어머니도 패널로 나왔다. 아픔을 잊기 위해 상담심리 공부를 하고 교수가 되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치유하는 입장에 있는 그 어머니조차 밀려오는 슬픔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세 번째 사례는 가장 고약한 생이별이었다. 30년 전 딸을 유괴당하고 생사조차 알 수 없어 여전히 지옥 같은 세상에 사는 71세의 아버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딸이 혹시 윤락가에라도 팔려간 게 아닐까 싶어 손님으로 가장하고 들어갔다가 맞아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그 후론 칼을 품고 다니며 전단을 돌린다는 아버지의 사연은 참으로 막막했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연신 한숨이 나와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했다. 지금쯤 41살이 되었을 딸을 생각하면 다른 자식들이 결혼해서 안겨주는 손주들 앞에서도 웃을 수가 없단다. 딸을 찾는데 조그만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 카메라 앞에 선 그 아버지에게, 이제 할 만큼 했으니 내려놓으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어린 자식이 먼저 죽으면 그 충격으로 부모는 정서적 무감각에 빠진다. 분노, 죄책감, 무력감, 절망감, 불안, 공포 등 온갖 감정에 압도되어 모든 감각의 문을 닫아버린다. 자신이 살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꿈같은 장례식을 어떻게 치렀는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오면 자식이 없는 텅 빈 세상에 홀로 내팽개쳐진 것 같은 황량함에 몸부림친다. 위로의 말을 건네던 주변 사람들도 다들 자기 생활로 돌아가고...... 잘 수도, 먹을 수도 없고 그 어떤 것도 즐겁지가 않다. 망령처럼 되살아나 자신을 괴롭히는 죄책감의 늪에 빠지면 빠져 나올 수가 없다. ‘그 때 그랬어야 했는데, 내가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며 끊임없이 자신을 학대한다.
자식이 먼저 죽으면 ‘나는 살 가치도 없는 놈이야. 무슨 낯짝으로 살아가나’ 자책하면서 자살을 감행하기도 한다. 아무 것도 삼키질 못하는 유족에게 죽이나 미음, 우유나 주스는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마저 삼킬 수 없거나 거부하는 사람은 링거에 수면제라도 타서 맞혀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영양제는 무엇일까? 그들 옆에 함께 있어 주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건네는 위로와 조언에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고 비틀거리기도 한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불행 앞에 선 그들을 우리는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 울어” “슬퍼한다고 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와?” “어찌 생각하면 잘 갔어. 그렇게 살 바에야......” “좋은 데 갔을 겁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건네는 말인 줄은 알지만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며 멱살을 잡고 악다구니라도 쓰고 싶다. 아들의 장기로 7명을 살리고 100여 명의 삶에 희망을 준 것으로, 아들의 죽음을 승화시킨 첫 번째 아버지는 참 특별한 경우였다.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그런 말은 “언제, 밥 한 번 먹자” 처럼 영혼이 없는 말로 들린다. 빈말로 어설프게 위로할 것이 아니라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른다면 손이라도 꼭 잡고 차라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얘기하는 것이 낫다. 엄두가 나지 않는 청소나 빨래를 대신 해 주고 묵묵히 쓰레기를 버리거나 우편물을 가져다주고, 당장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음식을 갖다 주는 것으로 그들을 지옥에서 구할 수 있다. 생각 없는 질문으로 똑같은 대답을 반복해야 하는 수고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아픈 기억을 떠올려 다시 고통 속에 빠지게 하지 말고 잠자코 그들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들어 주는 것이 좋다. 경청하고 공감해 주고, 그들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그들의 입장이 되어 지지해 주고 수용해 주어야 위로가 된다.
짧은 가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론 벌써 겨울이다. 곧 얼음이 얼고 눈이라도 내리면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은 더욱 더 꽁꽁 얼어붙을 것이다. 이번 녹화를 통해서 나 또한 ‘애도 수업’을 받은 셈이다. 그들의 고통을 없애주기는 어렵지만, 그들이 고통 속에서 혼자 신음하지 않도록 옆에 있어 주어야 함을 절감했다. 끝까지 그들 옆에 남아 있겠다는 믿음을 줄 수 있다면, 자기 곁에 누가 있다는 온기만 느낄 수 있게 해 주어도, 그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새봄이 찾아오면 일상으로 돌아와 담담하게 자식의 죽음을 얘기할 힘과 용기가 솟아나도록, 그들의 얼굴에 다시 웃음과 희망이 피어날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다가가 손잡아 줄 일이다. (2020. 10. 31) *EBS TV 인생 이야기 < 파란만장 > 매주 목요일 오후 9시 50분 방송 재방송 매주 금요일 오후 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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