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욕이 툭 튀어나왔다.
인터체인지에서 길게 줄을 서 있는데 갑자기 새치기를 하는 게 아닌가. 이럴 땐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속도를 지키며 가고 있는데 뒤에서 계속 빵빵거리거나 바짝 차를 붙이며 위협을 해도 욕이 나온다.
그래놓고 잠시나마 머쓱해지는 건 또 왜일까?
한때 얌체족 운전자를 만나면 아들녀석이 씩씩거리며 험한 말을 하곤 했다. 그럴 때 “‘아이고, 사람 참...’ 하고 넘어가지 뭘 그렇게 흥분하냐?”고 했던 나이다. 욕하는 걸 보면 나는 늘 나무라곤 했다. 감정 조절을 못하는 것은 미성숙한 사람이 보이는 미숙함의 전형이라며 잔소리를 했다.
그러던 내가 5~6년 전부터 운전만 하면 육두문자가 튀어나올 때가 있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나는 도리어 미숙해져가고 있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욕이 나오기 시작한 그 시점이 공교롭다. 지도교수로부터 교육 분석과 집단상담을 받은 뒤부터 생긴 버릇인 듯 보이니 말이다. 설마하니 공부가 욕을 일깨울 수도 있을까? 아마도 억눌렀던 감정들이 쌓여 있다가 터져 나온 것일 게다. 그렇다면 무조건 틀어막을 수만도 없는 일 아닌가.
우린 욕을 금기시해왔다. 욕은 나쁜 것이며 욕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가르쳤다. 감정에 긍정적인 감정, 부정적인 감정이 따로 있는 게 아닌데도 화나 신경질, 짜증 같은 것은 억누르라고 가르치며 표현 자체를 못 하게 했다. 그러나 ’욕은 약이요 욕은 덕담‘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욕에는 순기능도 있다. 답답함과 짜증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배설 효과도 있고 내 감정을 확실하게 전달하는 소통의 효과도 있다. 썰렁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도 하고......
문제는 욕의 습관성이다. 욕은 하면 할수록 늘고 점점 더 자극적인 방향으로 진화해간다. 그래서 낭패를 보거나 폭력을 부르기도 한다. 흡연이나 음주 같은 행동뿐만 아니라 감정도 습관이 되는 것이다. 뇌란 놈은 멍청한 데가 있어서 유쾌한 감정이건 불쾌한 감정이건 익숙한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사고가 나서 내 차의 블랙박스를 확인할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한 적도 있다. 이미 성인인 아들 딸이야 이해를 하겠지만 천진난만한 우리 손녀 봄이가 보면 큰일 날 일이다, ‘할아버지가 저런 심한 욕을 하다니?’
오래 전 내가 가르치던 국민학생이 책상 앞에 붙여 놓았던 단어가 생각난다.
‘금개!
새해부터는 개구쟁이 짓을 그만 해야겠다는 결심이란다. 나도 ‘금욕!’이라고 써 붙이기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욕을 내뱉는 일도 줄여야겠지만 욕먹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겠다는 바램으로 ‘금욕’을 생각해본다.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 욕이 저절로 나오는 요즈음, 욕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2019.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