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부탁해!>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 소장. 가족학 박사) 설 가족 프로그램으로 ‘아빠를 부탁해’가 방송된다는 인터넷 뉴스를 보았다. 가족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무척 반가웠다. ‘가족’을 다룬 프로그램이 많지만 50대의 아빠와 20대의 딸이 출연하는 ‘아빠를 부탁해’는 내 얘기인 것 같아 관심이 더 쏠렸다. 그리고 부녀지간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한 자료들이 많지 않은데 앞으로 어떻게 얘기가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50대의 한국 남자들이 아빠가 되었을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자녀를 키우는 일차적인 책임은 엄마에게 있었다. 아빠는 돈만 잘 벌어다 주면 아이 키우는 일이나 집안일에서는 대체로 자유로운 시절이었다. 그러나 기혼 여성들의 취업이 늘고 경제적인 책임을 부부가 분담하면서 자녀 양육이나 집안일에도 남성들의 참여를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 결과, 그동안 일에 매달려 자녀 양육에는 주변적인 인물로 머물렀던 아빠들이 소외되는 일이 늘고 있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해서 젖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과정을 통해 엄마는 자녀들과 강력한 심리적, 정서적 유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아빠들은 자녀들에게 이제 다가가고 싶어도 아이들이 거부하고 방법도 잘 몰라 부녀 관계가 껄끄럽기만 하다. 게다가 아들이 아니라 20대로 성장한 딸들과는 이성이기 때문에 공통분모를 찾기가 힘들어 소통하기가 더욱 어렵다. 이번에 출연하는 네 명의 아빠도 사정이 비슷할 것이다. 20여 년을 한 지붕 밑에서 살았지만 정작 서로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즐겁게 웃으면서 함께 했던 추억도 거의 없을 것이다. 돌아보면 나 역시 다른 아빠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각 없이 사람 만나고 친구들 만나 술 마시다 보면 일주일 내내 늦는 날이 많았다. 갓난애와 씨름하는 아내를 외면하고 애 울음 소리에 잠을 못 잔다며 다음 날 출근을 핑계로 옆방에서 잤던 이기적인 남편이었다. 아이 돌보는 아내는 집에 두고 혼자 영화 보러 다니고 주말에도 피곤하다고 잠만 청하던 철없는 아빠였다. 가정경영연구소를 시작하면서 나 자신 참 많이 바뀌기도 했지만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면 안타깝고 후회스럽기만 하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두고 서로 원망하고 비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 시절 생존전략이기도 했던 아버지들의 태도를 지금 잣대로 매도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아빠가 먼저 변해야 한다. 세상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면 가정도 변하고 가족도 변하고 딸들의 의식과 가치관도 바뀌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나이에 따라 아빠 역할을 지혜롭게 수정하면서 관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남자 친구가 생기고 결혼할 사람이 나타나면 한 가정을 이루어 떠나갈 딸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서도 이제 아빠가 먼저 변화할 필요가 있다. 비단 딸들의 행복뿐만이 아니라 아들과 아내 그 이외의 가족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그동안 쌓인 앙금을 풀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서적 안정과 성장,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도 이제 아빠들이 먼저 손 내밀어야 한다. 딸이 행복하지 않으면 아빠가 행복해지기 어렵다. 딸과 남편이 불행하면 엄마는 더욱 더 행복해질 수 없다. 그것이 바로 부부와 가족의 특성이다. 내가 죽으면 아이들과 아내, 남은 가족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를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나이 들수록 성공이나 부, 명예나 인기보다 자녀들의 행복에 더 큰 기쁨을 느끼는 나를 발견한다.
“아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는 아빠들이 더 많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웃고 떠드는 시간보다 더 큰,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아빠들이 더 많이 생기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빠는 무엇으로 고민하고 서운해 하는지, 아빠의 소망과 꿈은 또 무엇인지 돌아보면서 내가 먼저 아빠에게 다가가는 딸들과 아들이 더 많이 나타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단기간의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멀리 내다보고 최선을 다하여 새로운 가족문화에 기여한 프로그램 하나로 오래오래 기억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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