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들이 변해야 하는 이유>
좌절하고 절망하고 신음하는 이 시대의 수없이 많은 가장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도 50대 초반의 A를 잊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의 50대 남자들이 그렇듯이 A 역시 평생을 일, 일, 일을 전부로 알고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이었다. 휴가를 제대로 한 번 찾아 써 본 적도 없고 가족들과 여행 한 번 가 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한 만큼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아 승진이 빨랐다. 회사도 나날이 커지고 직원도 늘었다. 하지만 무리한 자금 조달과 기업 인수, 그리고 전혀 경험도 없는 신규 사업에 회사가 손을 댄 것이 화근이었다. 어느 날 회사의 구조 조정으로 A는 한순간에 명퇴를 당하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20여 년간 내 청춘을 몽땅 바쳐서 일한 회사였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어 분하고 억울해서 잠이 안 왔다. 자신이 총대를 메고 그만 두면 회사에서 응분의 보상이 있으리라 믿었는데 이제 와서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담당 임원이 예의상 한두 번 만나 주더니 이제는 A의 책임도 크다는 쪽으로 말을 바꾸는 게 아닌가.
20년 넘게 눈만 뜨면 어디론가 출근을 했었는데 출근 할 데가 없다는 사실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오라는 데도 없었고 50대 초반인데도 완전히 노인 취급하듯이 했다. 퇴직한지 1년이 다 되어 자가용 기사라도 해 볼까 알아봤지만 나이가 많다고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더욱 황당한 것은, 마지막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아파트 경비직에 응시했는데 그것조차도 경쟁률이 높아 고배를 마신 일이었다. 이력서를 몇 십 군데나 내 봤지만 오라는 데는 모두 영업직이었고 그것마저도 본봉은 없이 다 능력급이었다. 기회조차 얻지 못한 아파트 경비 월급도 교통비와 식대를 빼면 남는 게 없으니 더욱 앞길이 막막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일은 한평생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기를 쓰고 일에 매달렸는데 그 가족들로부터도 외면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분한 마음을 거의 매일 술로 달래는 남편이 못마땅하기야 했겠지만 한두 달 남편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던 아내의 불만과 바가지가 나날이 커졌다.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감사나 위로는커녕 남편을 천하의 좁쌀영감, 잔소리꾼으로 몰아붙였다. 게다가 매일 술 마시고 술주정이나 하는 알코올 중독자로 매도하는 데에는 분통이 터지고 말았다. 군 입대를 앞두고 대학교 휴학 중인 아들 녀석은 매일 술에다 12시가 넘게 들어오는 날이 다반사였다. 아버지에겐 관심조차 없는 아들 녀석에게 한 번은 무슨 술을 그렇게 마시고 다니느냐고 한 마디 했다. 그랬더니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 거라고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는데 아내만 아니었다면 큰 싸움이 날 뻔했다. 고 3인 딸아이는 또 얼마나 유세를 하는지, 고3이 무슨 큰 벼슬이나 되는 것처럼…….거실에서 텔레비전도 못 보고 늘 눈치를 봐야 했다. 게다가 노크도 안 하고 자기 방에 들어갔다고, 아빠는 무식하게 예의도 없이 남의 방에 불쑥 불쑥 들어오느냐고 대드는데 참담한 심정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냥 콱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일평생 가족을 위해 열심히 돈 벌어다 주고 청춘을 다 바쳐 희생하며 살았는데 내가 왜 이제 와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합니까?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내가 도대체 뭘 위해 이렇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네요. 가정으로 돌아오면 가족들이 따뜻하게 맞아줄 줄 알았습니다. 런데 그게 제 착각이었네요. 그런데 제가 지금 와서 뭘 어떻게 해야 되죠? 세월을 거꾸로 돌릴 수도 없고......” 같은 남자이자 남편이고 아빠인 나도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B는 잘나가는 40대 후반의 CEO였다. 잘릴 염려도 없는 회사의 오너로서 창업 10년 만에 탄탄한 중소기업의 사장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이혼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 사람이 지금 농담하자는 건가, 이 사람이 도대체 지금 미쳤나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누구처럼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마누라를 두드려 팬 것도 아니고 돈을 못 벌어다 준 것도 아니며 밤에 남자 구실을 제대로 못한 것도 아니었으니 더욱 기가 찼다. 하지만 아내는 도저히 더는 못 살겠다,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은 이 결혼생활을 죽기 전에 빨리 끝내고 싶다며 울었다. 자신이 이혼을 하자고 했으면 했지 이혼을 당하리라는 생각을 눈곱만큼도 해 본 적이 없는 B로서는 갑자기 턱, 숨이 막혔다. “니가 제 정신이야? 길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 봐. 그게 말이 되느냐고? 그딴 일로 이혼을 할 것 같으면 같이 살 놈들이 얼마나 되겠어? 당신 혹시 남자 생긴 거 아냐? 그렇지? 말해 봐. 말을 해 보라고?” 이성을 잃은 A가 세차게 목을 잡고 흔들어도 아내는 싸늘한 냉소를 흘릴 뿐 일언반구도 없었다. ‘고작 생각한다는 게 그 따위니 내가 이혼을 하지, 한심하다 한심해’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것같았다. 사회에서는 성공한 경영자로 연일 언론에도 소개되고 회사에서는 모두들 떠받드는 CEO인데 집구석에서 호강하는 마누라는 날 속물 취급을 하다니, 죽을 맛이었다.
아내의 얘기인 즉슨 남편이 자길 너무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일류대 나왔다고 지방대를 나온 자신을 무시하고
말끝마다 ‘무식한 게 니가 뭘 아느냐’고 핀잔을 주었다는 것이다. 생활비도 안 주고 매번 지출할 일이 있을 때마다 푼돈을 탄 뒤, 영수증을 첨부해서 보고해야 하는 그 생활이 죽기보다 싫다고 했다. 남들은 다 부잣집 사모님으로 알고 부러워하지만 자긴 노예나 다름없다는 말엔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왔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이만큼 자수성가하여 앞으로도 알뜰하게 더 잘 살아보자는 거였는데...... 사회생활 경험도 없이 집에서 살림하고 애들만 키운 아내에게 무식하다는 얘기를 몇 번 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내를 무시한 건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일류대 나왔다고 아내를 무시했다는 얘기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부모까지 펄펄 뛰었다. 남편 잘 만나 80평 아파트와 외제 차에, 배가 불러서 하는 소리, 간땡이가 부어서 하는 소리라고 분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아내는 넓은 집도, 외제 차도 필요없다고 했다. 집으로 손님들 초청해서 접대하는 일도 이제 지긋지긋하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청소하기만 힘들지 넓은 아파트가 뭐가 필요하냐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칼질하고 와인 마시는 것도 이젠 질린다고 했다. 된장 찌개, 김치 찌개 보글보글 끓여서 맘 편히 식사하고 싶은 게 소원이라는 것이다. 우울증에 잠도 못 자고 나날이 야위어만 가는 아내와 겉으로만 도는 아이들 사이에서 회사 일도 조금씩 차질이 생기며 매출까지 급격하게 줄었다.
형제 중에 가장 성공한 자식으로, 동창 중에도 가장 잘 나가는 친구로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독차지했던 B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벌써 1년이 다 돼가는 이 희망 없는 싸움을 끝내고 지긋지긋한 지옥같은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 아내의 말대로 이혼을 해버렸다. 아직도 내 나이 젊고 돈 있는데 나하고 재혼하고 싶어하는 여자는 줄을 섰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혼 후의 삶은 자신의 생각과 너무나 달랐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활기가 펄펄 넘치던 B였는데 웬일인지 맥이 탁 풀리면서 기가 빠졌다. 그리고 짜증과 신경질만 늘었다. ‘니가 이혼하자고 하면 내가 뭐 겁낼 줄 알아? 그래 이혼해 줄게. 니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감행한 이혼이었는데 자신이 이혼당했다는 생각을 좀처럼 지울 수가 없었다. 이혼녀만 손가락질하는 것이 아니라 이혼한 자신을 바라보는 눈도 예전 같질 않았다.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가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어 좋은 것은 불과 몇 개월이었다. 반기는 사람도 없는 불 꺼진 아파트에 들어서는 어느 날 밤, 눈물이 났다. 그러나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아이들이 철저하게 엄마 편을 들면서 아빠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 가정을 깬 것은 아내인데, 애들이 나에게 왜 그러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돈만 있으면 재혼을 쉽게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오판이었다. 이혼한지 2년을 맞으며 부모님과 주위의 권유로 몇 사람을 만나봤었다. 하지만 모두 다 자신의 돈을 보고 접근하는 것 같아 마음을 열 수가 없었다.
가족을 위해 일평생 희생했다고 A는 생각했지만 그 부인의 생각은 달랐다. 직장 그만 두고 지금까지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애들 낳아서 키워 준 자기도 희생했다는 것이었다. 바쁘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남편은 월급만 갖다 주면 자기 할 일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의 따뜻한 말 한 마디와 아빠의 칭찬 한 마디가 너무나 절절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교육적인 체벌이라고 생각했던 매가 아이들에게는 폭언과 폭력으로 기억돼 큰 상처를 남겼고……. 그저 무섭고 엄한 아빠로서 명령하고 지시하고 야단만 쳤던 사람, 매사를 지적만 했지 고맙다, 수고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남편이었다.
B도 마찬가지다. B의 말대로 남편이 자기를 때린 적도 없고 바람을 피운 적도 없으며 돈을 못 벌어다 준 것은 아니었다고, 밤에 남자 구실을 못 한 것도 아니라고 부인이 인정했다. 그러나 부부가 그런 이유로만 이혼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사람은 돈으로만 사는 게 아니지 않느냐고 따졌다. B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했지만 사사건건 남편이 자신을 무시하고 돈 몇 푼으로 자기를 조종한다고 생각하면 그 모멸감 때문에 죽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넒은 아파트에 좋은 차, 그게 다가 아니었던 것을 B만 몰랐다. 아내가 원한 것은 따뜻한 말 한 마디와 이해였다. 20년 가까이 부부가 살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모른 것이었다. 물론 자신의 어려움을 표현하지도 않고 이혼으로 문제를 해결하려한 아내의 잘못도 있었지만 사회가 변화하고 세상이 변함에 따라 내 아내와 내 아이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모르는 B의 잘못 또한 컸다. 이제 남성들이 변해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변해야 할까? 그걸 이제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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