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가족을 말한다
新가족의 탄생
새로운 가족 구조의 등장과 배경
세상이 바뀌고 사회가 변하면서 가족의 모습도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초혼으로 맺어진 부부와 그 자녀로 구성된 사람들을 일컫는 ‘가족’이 이제는 모든 의미에서 도전받고 있는 것. 이전에는 흔치 않았던 새로운 가족이 등장하고 있는데 재혼가족, 한부모가족, 무자녀가족, 입양가족, 조손가족 그리고 따로 떨어져 사는 분거가족이 대표적이다.
그 중에서도 1~2인 가구가 크게 늘어 전체 가구의 48.2%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청년층의 만혼과 미혼, 장년층의 이혼이 증가하고 혼자 사는 고령자가 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 다양한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노후생활을 대비한 연금 상품이 인기를 모으는 것이나, 1~2인 가구를 겨냥한 간편식품의 매출이 급격히 높아진 것이 한 예이다. 여러 명의 가족이 함께 모여 살면서 경제적으로 기댈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과 불안감이 커진 탓이다.
그런가 하면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부모와 살림을 합치는 ‘불황형 대가족’도 등장하고 있다. 결혼 직후 분가해서 살다가 경기가 어려워지자 부모 세대와 집을 합친 케이스로, 자식 세대가 스스로 선택한 결정처럼 보이지만 일종의 사회적 압박이 작용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다문화가족도 눈여겨 볼만하다. 노총각 구제 차원에서 국제결혼을 독려하는 사회 분위기로 시작된 것이, 국제결혼 업체의 난립과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의 이주 등으로 최근 몇 년간 크게 증가했다. 세계화라는 흐름 속에 국제결혼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다문화가족을 소재로 한 TV 프로그램도 눈에 띄게 늘었다. 우리 사회가 다문화사회로 빠르게 변모해 가고 있는 현실을 영화나 드라마가 투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대와 성별에 따라 가치관도 변화해
시대적인 변화와 사회 변화는 가족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가족원의 세대, 연령,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다. 노인 세대는 여전히 부계혈연 중심의 가계 계승이나 효 사상, 가부장제를 중시하는 전통적 가족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반면에 중년 부모는 산업사회의 경쟁적이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가족의 생존을 위해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도구는 가족이라는 믿음으로 도구적 가족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젊은 자녀들은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보다 따뜻한 사랑과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정서적 가족주의를 받아들여 가족보다는 개인을 챙기고 동반자적인 부부관계와 부모자녀 관계의 질적인 변화를 중시한다.
미혼 남녀의 경우 결혼 대신 독신이나 동거를 선택할 수 있다는 쪽으로 가치관이 바뀌었다. 이혼 역시 예전에는 자식들을 위해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차선의 선택으로서 또는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가정에 문제가 있다면 이혼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졌다. 또 과거에는 재혼 남성과 초혼 여성의 결합이 많았는데 요즘은 재혼 여성과 초혼 남성의 결합이 더 많아져 가치관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효도에 대한 생각도 크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장남이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형편 되는 자식이 모셔야 한다, 딸자식도 모실 수 있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또 같은 집에서 살면서 여러 가지 갈등이나 불화를 겪는 것보다 오히려 따로 살면서 자주 왕래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늘었다.
맞벌이 늘면서 부부 역할에 대한 생각도 달라져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맞벌이 부부의 증가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생활에 대한 성취감과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면서 기혼 여성의 취업률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남자 혼자 벌어서는 경제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워진 점, 맞벌이에 대한 인식과 가치관이 바뀐 것도 원인 중의 하나이다. 이에 따라 남자는 나가서 돈을 벌고 여자는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를 키운다는 이분법적인 성 역할의 개념도 크게 바뀌었다. 전통적으로 남자의 일, 여자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분야에도 소질과 적성만 맞는다면 남녀 구분 없이 참여가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가사도 부부가 분담하고 자녀 양육에도 아버지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전업주부를 자처하는 남성들의 출현이 이제 더 이상 화젯거리가 아니다. 아직 그 비율이 미미하기는 하지만 아내 대신 육아 휴직을 신청하거나 분만실에서 아내의 출산에 동참하는 남편들도 늘고 있는 상황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아이의 양육이 외가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현상도 쉽게 볼 수 있다. 맞벌이에 따른 육아 부담으로 처가살이를 하는 남자가 늘어나며 ‘신 모계사회’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시집살이를 하는 여자는 1990년 약 44만 명에서 지난해 19만 명으로 절반 이하로 줄어든 반면, 처가살이를 하는 남자는 같은 기간 약 1만 8,000명에서 5만 3,000명으로 세 배가량 늘었다고 한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는 안 한다’는 속담도 옛말이 돼 버린 지 오래, 요즘은 처가살이가 아니더라도 처가 근처에 터를 잡고 사는 것이 흔한 풍경이 되었다.
‘가족 사랑’을 주제로 한 마케팅 효과 여전해
LG경제연구원의 ‘2012 소비자 실태 조사’에 따르면 30~40대는 삶의 최우선 가치를 ‘가족’에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에서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가정생활이 더 중요하다’는 질문에 30대는 52.2%, 40대는 83%의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가족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가족과 함께 여가활동을 즐기는 인구도 증가했다.
이에 따라 소비 시장에 부는 가족 마케팅 바람도 거세다. 통신업체에서는 가족을 겨냥한 패밀리 요금 할인제를 시행하거나 가족을 대상으로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펼치고 있으며, 금융기관에서도 부모와 자녀가 함께 가입하면 금리를 우대해 주고, 부모님 용돈을 관리하기 위한 전용 효도 통장을 발급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어느 식품 회사는 가족을 대상으로 한 쿠킹 클래스를 만들고, 모 백화점은 가족농장을 만들어 바비큐 파티 등의 이벤트로 가족 단위의 고객을 유혹하고 있다.
식품 이름에도 ‘엄마’, ‘우리 아이’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 아이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을 자극하거나 안전하다는 의미를 강조하기도 한다. 축 처진 어깨로 돌아온 남편에게 사랑이 담긴 요리를 대접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가족을 위한 지출은 줄일 수 없다는 심리에 호소하는 CF도 있다. 아웃도어 업체도 패밀리 룩을 광고하고, 심지어 정치에도 ‘가족’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아무리 경기가 안 좋더라도 가족을 위한 지출은 줄일 수 없다는 소비자의 가족 사랑을 마케팅에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 ‘가족 친화 경영’으로 일과 가정의 균형 지원
이런 움직임은 비단 마케팅 활동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도 앞 다퉈 가족친화경영을 도입하고 있는데, 본인 및 배우자를 위한 출산 장려금은 물론 보육비와 교육비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육아 휴직과 산전, 산후 휴가 실시, 보육시설 확대, 산모 도우미 지원 등으로 사내 고객인 직원 만족에 힘쓰고 있다. 그 외에도 시차출퇴근 제도를 실시하고 재택근무를 확대하며 육아 기간 동안의 근로 시간을 단축하고 가족 상담을 실시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과거에는 매출 증대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단기적인 성과에 매달렸지만 요즘은 조직원들의 가정이 평안하고 가족들이 행복해야 생산성도 높아지고 경쟁력도 생긴다는 것을 기업이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가족친화경영의 효과는 근로자의 직무 만족도가 높아지고 경력 개발에도 도움이 되어 결국 조직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통하여 이미 밝혀진 바 있다. 그 결과 가족 친화 경영을 실시하고 있는 기업에 우수한 인력이 몰리고 결근율과 이직률, 안전사고가 감소하며 기업의 사회적인 이미지도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혹자는 지금의 신 가족 풍경을 두고 가정 폭력, 학대, 가출, 별거, 이혼 등을 예로 들며 ‘가족 해체나 가정의 붕괴’라고 개탄하기도 하지만, 위와 같은 긍정적인 변화를 보면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가족도 그에 적응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리고 가족의 기능 역시 축소되고 있기는 하지만, 조건 없이 우리를 수용해 주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가족 고유의 기능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출처] 현대모비스 사보 9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