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 금요일
가족과 함께 전라도 장성 축령산엘 다녀왔다. 편백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숲길을 꼭 한 번 걸어보고 싶었는데 아내와 딸아이가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해서 다행이었다.
운전하는 피로를 덜고 창밖의 풍경과 담소를 즐기면서 여행을 하자고 KTX를 탔는데 다들 좋아했다. 군대생활을 했던 장성에 KTX까지 정차하니 얼마나 또 고맙던지......
딸아이가 예약한 펜션의 황토방에 들어서니 청소도 잘 안되어 있고 에어콘도 없는데 개미까지 들끓었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한 숙소니 뾰족한 방법이 없어 샤워를 한 후 잠깐 눈을 붙였는데 식구들마다 개미에게 물려 피부가 벌겋게 부어올랐다.
나와볼 줄 알았던 주인은 8Km 근처에 살고 있다며 전화로만 통화를 해서 우리를 황당하게 했다. 에어콘이 있는 다른 방으로 바꾸어 주었지만 새벽 4시에 아내가 기겁을 하는 소리에 온 식구가 잠을 깼다. 아내가 지네에게 물린 것이다.
불을 켜고 지네를 잡는다고 법석을 떨었지만 안타깝게 지네를 놓치고 말았다. 불안해하는 아내와 딸아이를 위해 거실에서 온 식구가 함께 잠을 청했다.
딸아이가 스마트폰으로 검색한 내용을 보니 다행스럽게 독은 없는 지네같았다. 그래서 얼음 찜질을 했더니 더 붓지는 않고 별 일은 없었지만 좀더 철저하게 내가 확인해 볼 걸 싶어 가장으로서 무척 미안했다.
그리고 가족여행을 떠나서 모든 가족이 무사히 그 여행을 즐기고 돌아온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절감했다. 만약 그런 가족이 있다면 그 가족은 행복하게 사는 가족임이 틀림없다.
이튿날은 주인 아저씨가 숲길까지 차로 태워 주어서 축령산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비가 와서 아름드리 나무들로 가득한 숲길을 충분히 즐기지는 못 했지만 비오는 날의 정취를 즐기며 넘치게 행복했다.
비가 많이 쏟아져 저수지 근처의 어느 펜션에서 비를 피했다. 숲을 감싸안은 구름과 나무와 나무들 토닥이며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오랜만의 고요와 마음의 평화를 누렸다. 그리곤 어제의 끔찍했던 순간들을 다 잊을 수 있었다.
언젠가는 숲 근처에 조그만 나무집을 짓고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나의 소망이 이루어지기가 결코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차 쓸 일이 별로 없어 렌트카보다 택시를 이용하자고 했지만 차가 없으니 발이 묶인 느낌이 들어 답답하기도 했고......
편리함에 오래도록 길들여진 우리에겐 하루 이틀은 모르지만 시골로 내려와 산다는 것이 결코 낭만이 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망을 버릴 수가 없으니 언젠가는 그 꿈에 도전을 한 번 해 봐야겠다. 덜컥 땅 사서 집부터 짓는 무모함이 아니라 천천히 시골 생활을 알아가며 적응하면서 시골에서의 내 역할을 찾을 수 있다면 불가능한 꿈은 아닐 것이다.
용산역에 내려 길거리 떡볶이 집에서 가족여행을 결산하며 다음에는 좀더 철저한 준비와 사전 답사로 아들 아이가 가족여행을 기획해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결혼하기 전에 몇 번의 가족여행을 더 할 수 있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