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으로 독립하는 자식을 만들기 위해 떠나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만 서른 살이 되면 집에서 나가 달라고 딸아이와 아들 녀석에게 공식적으로 통보했다. 결혼을 하고 안 하고는 본인들이 결정하겠지만 만 30세가 되면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 엄마 아빠의 생각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조금은 서운해 하는 듯도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누누이 강조했던 우리 집 가정경영 방침인지라 아이들이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아내는 처음부터 내 의견에 찬성하지 않았다. 딸아이를 서른 살이 됐다고 내보내면 결혼할 때 그런 것을 문제 삼을 집안도 있다며 반대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의존적이지도 않은데 꼭 그렇게 야박하게 해야만 되느냐며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서도 부모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자식들의 사례를 들어가며, 무조건 아이들을 고생시키거나 집에서 내보내는 것이 목적이 아님을 설득하여 합의를 이끌어냈다.
자식 대신 수강신청을 해 주거나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써주고 인사고과 결과를 가지고 인사 담당자를 찾아가 따지는 부모와 자식들의 얘기를 많이 보고 듣는다. 큰 불만 없이 직장에 다니고 있는 자식에게 “쥐꼬리만한 그 월급 받고 다니려면 내가 용돈 줄 테니 그만두라”고 종용하는 부모도 있다니 한심한 일이다.
요즘 청년실업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정말 진정한 취업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기는 때도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희망 직장만을 고집하지 말고 조금 성에 안 차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정말 하고 싶은 내 일’을 위한 발판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모가 공짜로 재워 주고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심지어는 대학 졸업 후에도 용돈까지 챙겨 주니까 취업난을 핑계로 적극적으로 취직할 생각을 안 하는 게 아닐까?
세계 최고라는 자녀교육열로 공부, 공부만을 강조하며 공부 외의 모든 것을 대신 해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생력이나 판단력이 없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조차 모르며 험한 세상을 혼자 헤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부모 밑에서 안주하며 점점 무기력해지고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 결국 나이 들어서도 부모 집에 얹혀 사는 ‘기생독신’을 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수치심도 없고 부모의 조종이나 간섭에 대해 거부감도 별로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부모들이 결핍을 모르는 자식들을 양산하여 생긴 사회적 비극이다.
그런 비극을 예방하려면 이제 자녀를 진정한 어른으로 키워야 한다. 신체적, 법적으로는 성인이 됐지만 감정과 분노 조절을 못 하면 어른이 아니며 충동을 자제할 줄 모르면 어른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사회적,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않으면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면 진정한 어른이라고 볼 수 없다. 자녀를 진정한 어른으로 키우려면 사소한 것부터 자기 일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며 그 결과에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잘못된 결정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비교적 작은 어릴 때부터, 자기 스스로 대가를 치르는 쓰라린 경험을 하게 해야 한다. 부모가 그 대가를 대신 치러 주어서는 절대 안 된다.
‘이번 한번만, 딱 이번 한번만’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자식이 죽을 때까지 뒤치다꺼리를 할 수 있는 부모라면 몰라도 과잉보호는 자식을 망치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 마약이나 다름없다. 책임감이란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한 뒤에야 얻을 수 있는 복잡하고 값진 기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과 관심, 믿음과 인내를 가지고 자녀를 지켜보며 기다려줄 줄 아는 부모의 태도가 필요하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언젠가는 그들을 잘 떠나보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자식들을 잘 떠나보낼 수 있는 부모,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독립하는 자식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떠나보내는 연습, 떠나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필자]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국민일보 문화칼럼 청사초롱 2011/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