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2일!
결혼 30주년, 그 설레는 새 출발!
“여보,
나 이제 들어가는데 막걸리 한 잔 할래? 수육 사갈까?”
내
얘기를 듣고 있던 택시 기사가 혹시 TV에 나오는 분 아니냐며 참 가정적이라고, 사모님을 사랑하는 것 같다고 했다. 쑥스러워 웃기만 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내가 좋아하는 막걸리를 사면서 몇 병을 기사에게 권했다. 택시 기사는 굳이 막걸리 값을 주겠다고 했지만 부인과 한 잔
하시라며 사양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아내는
술을 거의 못하는지라 딸에게도 한 모금 권했다. 막걸리 두 병과 아내가 차려낸 김치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내가 뭘 먹고 싶다고 하면 마치
마술사처럼 무엇을 뚝딱 만들어내는 아내를 보며 딸아이는 “아빠가 장가를 참 잘 들었다”기에 내친김에 아내에게 “당신도 나에게 시집 잘 왔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내 말에 동의를 해 주었다. 듣고 있던 딸아이는 ‘저녁마다 설거지를 자청하는 나 같은 딸을 낳았으니 두 분은
정말 결혼 잘 하신 거’라고 해서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철없는 남편 기다려준 아내를 위하여
소박하고
행복한 우리 집의 일상이다. 그러나 결혼할 당시만 해도 난 정말 뭘 모르는 남편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에 가고,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에 가는 것처럼 결혼도 때가 되면 다 하는 건줄 알았다. 그리고 때가 되면 아이를 낳은 뒤 남자는 밖에 나가서 돈 벌고 여자는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거라고 생각했을 뿐, 결혼의 의미나 남편 역할, 아빠 역할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공부해 본 적이 없었다. 신혼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아내를 다정하게 안고 포즈를 취할 줄 몰랐고 길을 가다 아내가 손을 잡아도 남 보기 부끄러워 슬그머니 손을 빼는 남자였다.
아이와 씨름하는 아내를 집에 두고 신혼 때도 혼자 영화 보러가는 무심한 남편이었으며, 밤에 아이가 운다고 베개 들고 옆방에 가서 잠을 청하는
이기적인 아빠였다.
그렇게
결혼 20주년을 맞으며 결혼이 뭔지, 부부가 무엇인지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아빠 역할은 어떻게 하고 남편 역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웠다.
그리고 아이들을 정말 잘 키우려면 부부가 화목해야 한다는 기본을 깨달았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모델이며 가정이 흔들리고 부부 관계가 깨져버리면 성공이나 부의 의미가 반감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아내라는 것을, 끝까지 내 곁을 지켜줄 사람도 다름 아닌 아내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가정의 중심은 아이들이 아니라
부부가 되어야 한다고,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서 지나치게 일 중심, 돈 중심으로 살지 말자고 강조하며 다녔다. 술을 마시면 12시 전에
귀가하려고 애썼고, 모처럼 한 잔 할까 하다가도 일찍 들어가면 좋아할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아내의 성장을
위한 일이라면 내가 먼저 발 벗고 나섰고 기쁜 마음으로 아내를 지지하고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가끔은 다투기도 하고 냉전을 펼칠 때도
있다. 더러는 속 모르고 “사모님은 얼마나 좋으시겠어요? 부부싸움은 전혀 안 하시죠? "하고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땐 "저하고 한 번
살아보세요. 저하고 안 살아 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받는다. 하지만 다툼 없는 부부가 반드시 화목한 것은 아님을
알기에 주위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진 않는다.
30주년을 기다려 하는 말, “그대를 사랑합니다!”
2011년
11월 22일이면 결혼 30주년을 맞는다. 아내는 당신과 30년을 산 거냐며, 징그럽다고 농담을 하지만 나는 아내와 별 일없이 30년을
살아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젊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젊음을 부러워하는 사회 분위기이지만 난 젊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편은 아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젊은이들에 비해서 난 대단히 많은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혼도 하고 사랑하는 배우자도 있으며
직장생활을 하는 딸아이와 곧 대학을 졸업할 아들까지 있으니 나만한 부자가 얼마나 될까 생각하며 늘 감사하기 때문이다. 두 회사의 대표이사로
기업을 경영도 해
봤고 지금은 대학의 부총장으로 어릴 때의 꿈이었던 선생님도 됐으니 무엇을 더 바라랴.
30여
년 전, 30분 간격으로 신혼부부를 강냉이 튀겨내듯이 찍어내는 예식장이 싫어서 우리 부부는 대한출판문화협회 강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 때문에
결혼식 사진이 엉망이라고 아내는 종종 불평을 한다. 그래서 아내가 동의를 하면 결혼 30주년에 결혼식을 다시 한 번 하고 싶다. 턱시도 차려입고
드레스 입은 아내와 아이들과 사진 한 장 찍어 두고 싶다. 그리고 1박 2일이라도 좋으니 아내와 두 번째 신혼여행을 떠나고 싶다. 날 믿고 참고
기다려 준 아내, 부족한 사람을 지금까지 챙겨주는 아내에게 뒤늦게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
회사를
그만 두고 삶의 속도를 내가 온전히 조절하며 살았던 지난 13년과 달리 학교에서 의 새 생활을 시작한 지난 3월부터는 일이 내 삶의 속도를
좌우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과 같이 느리게 살기에는 남아 있는 노년기가 너무 길어 다양한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학교를 선택했지만 아내에게는 조금 미안하다. 당분간은 일 중심으로 살 수밖에 없을 거라고 얘기는 했지만…….
올해
나의 꿈은 새롭게 시작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아내가 다시 시작한 대학원 공부를 잘 마치는 것이다. 그리고 딸아이는 결혼할 사람을 만나고
아들 녀석이 적성에 맞는 직장을 구하면 더 바랄 게 없다. 굳이 욕심을 부린다면 올 연말엔 아내의 주량이 막걸리 1병 정도로 늘어 두 사람만의
데이트를 좀 더 자주 즐겼으면, 하는 것이다.
2011년
11월 22일을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내는 모를 것이다. 그 날, 나는 스스로에게 어른 자격을 주고 싶다. 쓸 데 없는 곳에 에너지 낭비하지
않고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으며 신혼 생활을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새 출발하고 싶다. 결혼 30주년이 되어서야 결혼과 부부의 의미를 알았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그것을 깨달았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세상엔 무늬만 부부인 사람도 있고 화목한 부부를 연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모습만 봐도 참 고운, 갈수록 내공이 높아지는, 향기 나는 부부가 되고 싶다.
[출처]
미즈코치2011년 5월호 [필자]강학중(한국사이버대학교 부총장/가정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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