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 소장은 가정학 박사다. 10년 전만 해도 대기업 대표이사로 있던 그가 가정학 박사로
탈바꿈한 데는 인생을 통틀어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는 마음에서다. 가정과 일, 하나의 희생없이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는 직업. 그가 찾아낸
건 가정경영전문가다. 대표이사의 직함을 내려놓고 가정 경영이라는 생소한 연구를 꿈꾸기 시작한 건 그의 나이 마흔둘의
일이다.
가정경영전문가, 아직까지 낯선 이 직업의 정체는 경영과
가정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을 경영하듯 가정을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 대기업에서 20년 넘게 경영 일선에 있던 강학중 소장(53)이
경영의 시스템을 고스란히 가정으로 옮겨 오면서 시작된 일이다. 내 아내, 내 아이들이 고객이라면 과연 가장인 내게 얼마나 만족할까?
신임투표를 한다면 과연 내년에도 다시 아빠, 남편의 자리에 뽑힐 수 있을까? 사내보, 단합대회, 회식 등 사원들의 의사소통을 위해 엄청남 비용을
쓰면서 과연 우리 가족의 소통을 위해 얼마나 투자하는가?... 한 기업의 대표이사와 한 가족의 가장 역할을 병행하면서 자신에게 던진 질문들이 그
시작이다. 그는 마흔둘에 그 답부터 풀기로 했다.
"사장의 딸, 아들이
아니라도 괜찮겠니?"
1997년 12월31일 종무식과 함께
20년간 계속한 그의 직장 생활은 마무리되었다. 사직서 제출 전 빼먹지 않고 한 일은 가족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아빠로서 와이프와 어머니, 아이들에게 일일이 물어봤죠. 사장의 아내가, 사장의 어머니가, 사장의 자녀가 아니어도 되는지. 대표이사 자리를 놓고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도 괜찮냐고요." 마흔두 살 가장이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말에 가족의 반응이 좋지만은 않았다. 생각이 확고하다면 반대하지는
않겠다는 아내와 달리 나이든 어머니는 "세상의 뜨거운 맛을 못봐서 그렇다"며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나마 힘을 실어준 건 당시 열
아홉, 열 여섯 두 아이. "아빠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 하셨으니, 아빠도 그렇게 사시라" 했단다.
가족의
걱정어린 시선 속에서 그는 대기업 대표이사 자리를 내려놓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를 두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진짜 이유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사직서에는 회장과 대판 싸우고 더러워 못 해 먹겠다는 결심도, 죽을병에 걸려 가정만큼 귀한게 없다는
깨달음도, 회사가 망해버린 상실감도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가장) 강학중과 대표이사 강학중 사이에서 고민한 것 같아요. 결제와 행사,
미팅... 조직의 장으로 보내는 하루하루, 과연 수많은 이들 중 인간 강학중을 만나고 싶어하는 이가 있을까? 생각했죠. 일과 가정을 균형 있게
병행해야겠다 싶었죠." 눈에 뻔히 보이는 연령의 한계도 결정의 계기가 됐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60세든, 70세든, 80세든 연륜을 쌓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저 글 쓰고, 강의하고, 가족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게 당시의 생각이었다. 가정경영연구소(www.home21.co.kr)를 답으로 찾은 건 2년 뒤의
일이다.
가정경영연구소 소장과
사시는 분, 얼마나 행복할까요?
가정경영연구소 소장이 된 뒤 자주 듣는 질문이다. 답은?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가정경영연구소는 교육과 상담, 코칭을 통하여 가족문제를 예방하는 가족 문제 예방센터"라 할 수 있다. 병원 경영, 기업
경영, 국가 경영... 어떤 조직에서든 경영 마인드가 중요하듯, 복잡해진 세상에 가정을 경영의 마인드로 합리적으로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엄청난 대기업도 한순간 잘못된 의사 결정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듯, 가정 역시 위기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는 논리. 여기엔 기업 경영에 쏟는
시간과 돈, 에너지 등의 노하우를 반의반만 쏟아도 웬만한 가정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스스로 가정경영연구소 소장이라는 새로운
직함을 단 그에게 당신의 가정은 어떤가? "여느 집과 크게 다르지 않죠. 아파트 같은 라인의 103호와 107호의 생활이 크게 다르지 않듯
말예요. 다만 우리의 갈등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어떻게 접근해 풀지 명확히 알죠. 그래서 가정 문제로 찾아오는 수많은 이들과 상담을 하면서 나는
어떻게 할까? 늘 생각하죠. 그분들께 내놓는 저의 대답은 아마 스스로 다짐하는 얘기일 거예요." 초창기만 해도 가정경영연구소 소장이라는
타이틀은 그 자신에게도 웬만큼 스트레스가 되었다 한다. 주변에서 "가정경영연구소 소장이랑 사시는 분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부부 싸움도 안
하시겠어요?" 같은 질문이 끊이지 않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내와 말다툼 도중 "밖에서는 그러면서 집에서는 대화가 안 된다" 는 말이라도 듣는
날에는 가슴에 비수가 되어 잠 못 이루기 일쑤. 갈등과 고민 속에서 그가 찾은 길은 나는 노력하고, 가족 개개인의 권리를 지켜주려 노력하는
사람... "사안별 최종 결정권에 대해 그 주체가 누구인지 늘 생각해요. 아들의 휴학과 입대를 놓고 부모로서 끊임없이 의견을 내놓고
설득하지만, 결정은 아이의 몫이죠. 이사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아파트로 갈까, 주택으로 갈까, 서울로 갈까, 교외로 나갈까...저야 교외 주택이
좋지만 실제적인 결정권은 아내에게 있죠. 이리저리 살피면서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깨달았다고 할까, 이 일을 하면서 얻은 대단히 큰
소득이죠."
10년, 강산이 변했고 집집마다 고민도
변했다
사업계획서 없는 조직이 없듯, 기업 경영에
들어간 노하우를 가정에 적용할 수 있다는게 강학중 소장의 생각. 거창한 사업 계획은 필요 없다. 일요일 저녁에는 반드시 온 가족이 모여
식사하기, 한 달에 한 번 떨어져 사시는 부모님 뵙기, 결혼기념일에는 부부 단둘이 보내기... 무엇이든 사업 계획이 될 수 있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윤리 경영, 투명 경영 ,고객 만족은 가정 경영의 핵심. 이것이 어떻게 가정 경영과 맞물리냐고? 의외로 간단하다.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불법 유턴을 한다거나 교통경찰에게 돈을 집어주며 봐달라고 하는 건 윤리 경영에 치명적이다. 부모의 외도도 마찬가지. 부부가 서로 딴
주머니를 찬다면 투명 경영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자칫 부부간 신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 강학중 소장은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고객 만족을 생각해보라 권한다. 과연 아이들은 내년에도 나를 엄마로 재신임해줄까?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시점을 벗어나면서부터는
재신임을 얻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기업 경영의 노하우를 각각의 가정경영에 적용시키는 사이, 가정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저출산에 따른 소가족의 강세, 늘어나는 만혼과 연상.연하 커플, 국제결혼의 증가에 따른 다문화 가정의 등장이 그것.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었고, 자녀 출산 역시 선택의 항목으로 바뀌었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는 등 변수가 많아지면서 집집마다 겪는
트러블도 달라졌다. "상담을 청하는 부부들을 살펴보면 10년 전에 비춰볼 때 남편과 아내가 기로워하는 지점이 뒤바뀐 경우가 종종 있어요.
매맞는 남편이 등장하고, 과음 후 늦게 귀가를 일삼는 맞벌이 아내, 외도하는 아내 등 아주 드물지만 10년 전과 비교하면 180도 달라진
상황이죠." 가정 내 역할도 달라진다. 고부 갈등이 서서히 장모와 사위의 갈등으로 분화했고,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갈등이 두드러진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도 옛말! 경제력과 입김을 갖춘 며느리는 고분고분한 며느리를 바라는 시아버지에게 불편한 존재다. 이전에는 며느리가 상담을
청했다면, 최근엔 시아버지가 연구소 문을 드드리는 경향이 느는 것도 특징이다. 그는 이러한 변화에 걸맞은 변화 경영을 주문한다. 가부장적인
가치관으로는 더 이상 가정을 이끌 수 없듯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는 자신의 역할부터 다시 찾는 자세가
필요하단다.
부부의 터닝 포인트, 가족 생활 주기 잘
극복해야
자, 그렇다면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한 비법은 무엇일까? 강학중 소장에게 그 비법을 물어봤다.
그는 가족의 중심이 부부라는 관점을 잃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부부의 관계가 가족 생활 주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게 그의 얘기다. 가족이 처한
주기에 따라 부부의 역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바로 변화 경영이다. 여기서 가족 생활 주기부터 알아보자. 강학중 소장은
<가족수업>에서 결혼 후 부부가 맞는 주기를 총 6단계로 소개했다. 1단계는 결혼 후 첫 자녀 출산까지 가족형성기,
2단계는 첫 자녀 출산부터 초등학교 입학까지 자녀 출산.양육기, 3단계는 첫 자녀 초등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자녀
교육기, 4단계는 첫 자녀 대학 취업과 군 복무 시기인 자녀 성년기, 5단계는 첫 자녀 결혼부터 막내 자녀 결혼까지 자녀 결혼기, 6단계는 막내
자녀의 결혼에서 배우자 사망 및 본인 및 사망까지 이르는 노년기다. 6단계 과정 중 그가 짚어주는 가장 중요한 시기는 1단계에서 2단계로
넘어가는 시점과 5단계에서 6단계로 넘어가는 시점이다. "뭐든 단계의 전이가 가장 힘든데, 바로 두 단계가 그렇죠. 먼저 1~2단계의
전이는 자녀의 출산으로 어머니, 아버지라는 지위를 획득하면서 겪는 어려움이죠. 이후 5~6단계의 전이는 자녀들이 결혼으로 가정을 떠나는
시기예요. 부부의 전령 역할을 하던 자녀들이 사라지고, 둘 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힘겨운 시간이죠." 특히 5~6단계의
전이에서는 관계의 중요성이 부각되는데 그 첫째가 부부관계, 둘째가 장성한 자식과의 관계, 셋째가 친구 관계다. 이러한 관계가 좋은 가정이야말로
노년기에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관계 설정을 위해선 변화하는 지점을 잘 파악해야 해요. 남자들 역시 생각을
바꿔야죠. 단계를 거듭할수록 가장의 역할이 돈만 벌어주는 게 전부가 아니거든요. 아내에게는 좋은 친구가 되고, 자녀에게는 친구처럼 편한 아빠가
되어야죠. 이건 여자들도 마찬가지예요. 젊은 남자들은 더 이상 살림 잘하고 아이만 잘 키우는 여자에 만족하지 않으니까요." 그는 남편의
도구적 역할, 아내는 정서적 역할로 나뉘던 그 옛날 부부 역할론의 경계는 허물어졌다고 말한다. 경제생활은 물론 자녀 양육부터 가사 노동까지,
남자와 여자가 아닌 부부의 적성과 취향에 따라 역할을 나누는 게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실전 팁이다.
부부들이여, 하루 빨리 예방주사를 맞아라
10년간
가정경영전문가로 활동하면서 그가 느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누구도 결혼 생활을 준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혼수에, 집에 어마어마한 시간과 돈을 들이지만 아무도 결혼 생활이나 부모와 배우자의 역할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죠. 정말 성숙한 남녀가 결혼해야
하는데 그렇지않은 경우가 다반사예요. 법적으로는 만 20세를 훌쩍 넘어섰지만, 분노와 충동 등 자신의 감정 조절도 제대로 못하는 부부가 너무
많아요. 그런부부들이 자녀를 낳으면 숱한 시행착오를 겪는 거죠. 자식 키우는 일은 리허설 없는 생방송이니까요."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부부 예방접종의 필요성이다. 결혼 전 혹은 직후가 가장 좋겠지만, 살면서 높은 산을 맞닥뜨리기 전인 가족 생활 주기에 앞서 다가올 주기의
가정상을 체크해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정은 어떤 모습일까? "음... 전 요즘 별일 없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
생각해요. 우리는 엄청난 별일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에요. 아침에 눈뜨면 아이들 학교 가고, 남편도 출근할 데가 있고...
하하호호 웃고 깨가 쏟아지는 게 행복한 가정은 아니죠. 속내를 들여다보면 어느 집이든 문제가 없는 가정은 없으니까요. 다만 어떤 식으로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정이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죠." 그는 건강한 가정의 조건으로 감성과 믿음, 칭찬과 격려가 있는 가정,
대화가 있고 말이 통하는 가정, 공통의 가치관과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가정, 뭐든 많은 것을 함께 하는 가정을 꼽는다. 듣다보니 과연 우리
가정은 어디에 속할까 궁금해진다. 마땅히 속한게 없어 고민스럽지만, 그렇다고 벌써 포기할 일은 아니다. 길고 긴 생활을 놓고 볼때 이제 겨우
2단계를 막 끝낸 참이 아닌가. 아직 우리에겐 가족의 이름으로 함께 넘어야 할 산이 수없이 많다. 게다가 누구보다 화려하게 살 자신은 없지만,
지금처럼 별 볼일 없게 살 자신은 있으니 말이다. 이 땅의 별 볼일 없는 부부들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싶다.
[출 처] 내일신문(미즈내일 NO.479 강학중
소장 인터뷰
기사)
2010.7.7 취재/문영애 리포터 사진/박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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