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법
강 학 중(가정경영연구소장, 가족학 박사)
지체
장애가 있는 남편과 중1인 딸, 초등학교 1학년 아들과 사는 30대 후반의 여성이 방송을 통해 상담을 청해왔다. 남편 뒷바라지하며 두 아이들
키우기도 힘든데 일흔을 바라보는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려니 너무 힘들다는 하소연이었다. 남편에겐 누나와 형이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장애가 있는 막내아들만 싸고도는 어머니 때문에 명절 때나 되어야 만나는 사이였다. 시계 수리공인 남편의 수입도 점점 줄어드는데 사춘기가 되어서
그런지 딸아이와 남편은 얼굴만 보면 으르렁거렸다. 요즘 들어 매사에 신경질적이고 우울해 하는 남편에게 뭐라고도 못하고 나라도 돈을 벌러 나가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 고민이라고 했다. 장애가 있는 자식을 몰라라하고 늘 밖으로만 나돌던 시아버지와, 막내아들 밖에 모르고 살아온 시어머니
사이도 좋질 않아 집안 분위기는 늘 냉랭했다. 특히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자기 아들이 장애가 있다고 무시한다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억울해서
못살겠다는 사연이었다.
어느
가정, 어느 가족도 고민이나 갈등, 문제가 없는 집은 없다. 하지만 장애인 가족은 문제가 훨씬 어려워진다. 장애가 언제 나타났고 장애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떤 장애이며 장애가 또 얼마나 심한지 그리고 장애를 이겨낼 수 있는 가족의 힘이 어느 정도 있는지에 따라서 문제는 달라진다. 그러나
장애인 가족은 신체적, 심리적, 경제적인 스트레스가 일반 가족보다 훨씬 더 크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방법에 장애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게 없지만 특히 장애인가족들이 유념해야 할 사항이 있다.
첫째,
대화는 모든 가족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장애인가족들에겐 솔직한 대화가 더욱더 필수적이다. 방송국으로 사연을 보낸 가족만
하더라도
‘내가
남편에게 뭐라고 하면 자기가 장애인이라고 무시하는 거냐며 화를 내겠지.’ ‘아빠가 장애인이라고 딸아이가 날 무시하는
건가?’
‘저
마누라는 장애가 있는 막내아들만 싸고돌고 이 집의 가장인 나는 뭐로 보는 거야?’
‘막내아들을 나 혼자 낳았나? 평생을 남편, 자식 뒷바라지로 다 보내고 난 이 집 의 뭐지? 내 인생은 도대체 왜 이
모양인지......’
이렇게
혼자 상상하고 단정 짓고 포기하고 마음의 벽을 쌓으면서 문제를 키우는 경우였다.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고 속상하고 서운한지, 내가 원하는 것은
정말 무엇인지 정확하게 얘기해 주지 않으면 아무리 부부고 부모 자식 간이라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딸아이가 아빠에게 버릇없이 구는 것이 아빠의
장애 때문이 아니라 사춘기의 특성일 수 있다. 남편이 위축되고 우울해하는 것이 남편을 무시하는 아내의 태도 때문이 아니라 줄어든 월급이나
중년기의 위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말로 직접 얘기하는 것이 어렵다면 쪽지나 문자, 편지로 내 마음을 전해보자. 그리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가족이나 친척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 보자. 내 어려움을 짐작하고 알아서 도와 줄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고 내가 직접 다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의외로 ‘내 편’이 되어줄 수도 있다.
둘째,
장애가 있는 가족을 돌보는 일을 엄마나 아내, 며느리나 딸 등 여성들에게만 떠맡겨서는 안 된다. 가족이 힘을 합쳐 그 일을 분담하지 않으면 그
일을 떠안은 여성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장애인 가족을 돌보는 일에 자기를 가두고 고립시키게 된다. 특히 장애아를 둔 아버지들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돈을 버는 일로 시간을 내기 어렵다면 아내의 노고에 대해서 진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장애아를 낳은 며느리를 구박하는 부모님이
있다면 아들이 나서서 그것은 아내 잘못이 아니라고 아내의 입장을 대변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형제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자녀들을 돌아보는 일도 잊지 말자. 그렇지 않으면 그 나이에 요구되는 정상적인 욕구조차 충족이 되지 않아 건강한 발달을 기대하기 어렵고
장애를 가진 형제와의 관계도 끊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장애인가족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 중 하나가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와 여가이다.
‘자식이
저 지경인데 내가 놀러 다니면 엄마를 욕하지 않을까?’
‘병석에
누워 있는 남편을 두고 내가 어떻게 혼자 즐길 수 있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죄책감 때문에 행복하게 살 나의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고 해서 늘 침통해하거나 우울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어머니와 아버지로서,
배우자와 자식으로서 최선을 다하되 나 자신을 돌보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장애를 가진 가족을 돌보는 일은 평생을 뛰어야하는 마라톤과
같아서 내 생활이 즐거울 때도 있어야 그것을 통해서 에너지를 얻고 누군가를 보살필 수 있는 것이다. 남편이나 가족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 내가 알아주고 내가 나에게 선물을 주자. 잠깐 동안의 휴식도 좋고 차 한 잔도 좋고 나에게 주는 꽃 한 송이나 시집 한 권도 훌륭한
선물이 될 수 있다. 이 힘든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자신에게 서운하지 않도록 보상해 주자.
넷째,
주위에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가족들이 있다면 자주 만나 정보와 경험담을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세상에 나만 이렇게 고통 받으며 사는
줄 알았는데 나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을 수 있고 나만 몰랐던 서비스와 정보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의사나
복지사, 교사 등 전문가들과 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도록 힘써야 한다. 더러는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비전문성 때문에 절망하거나 불친절하고
사무적인 태도 때문에 화가 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늘 동료나 협력자로서의 친밀한 관계를 잃지 않도록 하자.
그러나
무엇보다 장애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과 용기, 희망이 가장 중요하다.
몇 년 전에 소변이 나가는
길에 돌이 생기는 요로결석 때문에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지난 겨울에는 양쪽 고관절 수술로 목발을 짚고 6개월이나 장애인 체험을 톡톡히 한
적이 있다. 신체적인 고통 없이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대소변 잘 보고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내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절감했다. 평생을 장애로 고생하시는 분들은 무슨 사치스러운 얘기냐고 할 지 모르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는 가능하다. 시각장애로 고생하시는 분은 ‘그래도 내 귀로 들을 수 있으니까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청각 장애로 고통 받는 분들은 ‘내
눈으로 볼 수 있으니까 얼마나 행복하냐’고 자신을 달랠 일이다. 지체 장애인들은 ‘듣고 볼 수 있는 나는 그래도 행복하다’, 월급이 많고 적고를
떠나 일을 갖고 있는 분들은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고 감사하며 살자. 그리고 내 옆에 가족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사는 태도를 잃지 말아야겠다.
긴
겨울을 지나면 어김없이 봄이 찾아오듯이 이 시련과 고통을 이겨낼 힘을 주십사고 기도하면서 희망을 안고 내일 아침을
맞아야겠다.
[출 처] 장애인과 일터 201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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