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진정한 효도란?
추석이다. 모처럼 올려다보는 하늘에 보름달이 훤하게 걸렸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추석’ 하면 고향과 부모님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길이 막혀 답답하고 짜증도 나지만 보고 싶은 가족, 기다리는 부모님이 계시기에 올해도 그 긴긴 길을 달려가는 것이 아닐까? 추석을 맞으며 이 시대의 진정한 효도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전화 한 통이나 용돈 좀 드리는 것으로 효도를 다했다고 착각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겠다. 있지도 않은 약속이나 모임을 핑계로 찾아뵙는 수고를 생략해버린 적은 없는지 반성할 일이다. 그러면서 부모님께 못다 한 것을 자식에게 베푸는 것이라고 변명하지는 않았는지…….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학업이나 결혼을 미루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치르던 전통적인 효도를 요구하는 것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어린 자녀를 돌보는 것이 부모의 의무이듯이 나이 드신 부모님을 보살피고 공경하는 것은 자식의 당연한 도리이다. 효도에는 경제적인 효도, 정서적인 효도, 신체-서비스적인 효도가 있다.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자식들이 주는 용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부모님들을 돌보지 않는 것은 경제적인 학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잘 해 드리는 것도 좋지만 자주 찾아뵙고 전화 드리고 손자, 손녀 얼굴도 보여드리는 정서적인 효도에 부모님은 더 기뻐하신다. 거동이 불편하신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가거나 구경을 시켜 드리고 수발을 들어드리는 효도 또한 중요하다.
설사 부모님 사후에 내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하는 효도라도 좋다. 우리 부모님을 이렇게 잘 모시고 있다고 과시하는 효도라도 좋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효도라도 좋으니 부모가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부담감만 확대 해석하지 말고 이점 또한 생각해볼 일이다. 첫째, 자식의 도리를 다 했다는 자부심과 만족감을 선사한다. 또한 노화 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자신의 노후 준비를 더 잘 할 수 있다. 그리고 부모님이 아이들을 봐 주고 집안일도 거들어 주며 경제적인 도움도 주시는 장점도 크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남을 배려하고 언행도 바르며 식성 또한 바람직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꼭 장남만이 아니라 형편 되는 자식이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쪽으로 의식이 변하고 있다. 경제적인 도움과 시간 내기, 정서적인 돌봄 등, 자식들이 형편 따라 자기 몫을 분담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경제적인 여유는 있지만 함께 살 여건이 안 된다면 가까이 살면서 자주 찾아뵙는 전략도 한 가지 방법이다. 그런데 상담을 하다보면 지나친 효자 남편 때문에 못 살겠다는 사례를 만나기도 하는데 아들이 지혜롭지 못하거나 진정한 효자가 아닌 마마보이인 경우가 많다. 부부가 화목하게 사는 것이 효도의 첫걸음이며 그것이 선행되지 않는 효도란 진정한 효도가 아니다.
효도를 전근대적인 유물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효도야말로 외국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덕목이요 우리의 수출 상품으로 개발해도 손색이 없는 우리의 자산이다. 지나치게 자식 중심으로 살았다면 이제 자녀들에게 효도를 가르쳐야 한다. 노후에 자식들로부터 대접을 받아야겠다는 계산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인간존중’을 실천하는 길이며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자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난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한 사회적인 효도까지 가족이 함께 실천할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랴.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살 수 있게 된 것이 누구의 공로인지를 돌아보고 곧 우리도 노인이 됨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노인 문제를 ‘효도’라는 이름으로 개별 가족에게만 떠넘기지 말고 국가와 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출 처] 미즈코치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