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고통받는 가족들의 얘기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실직이나 폐업으로 어깨가 무거운 가장들도 딱하지만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지도 못하고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의 앞날은 더욱더 불투명하다. 한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생각하며 너도나도
뛰어들었던 펀드로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가하면 융자로 분양받은 아파트 가격은 폭락하고 살던 집은 안 팔려 이자 갚기에 바쁜
사람들은 앞날이 막막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경제적인 문제가 부부싸움이나 별거, 이혼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폭력과 자살을 낳기도 한다. 모든 사회
문제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회 범죄가 가족 문제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 부부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고 우리 가족은 화목하게 잘 산다고 믿었는데 사소한 문제나 위기 앞에서 크게 흔들리고
급기야 해체되는 가족이라면 우리 가족의 사랑이나 믿음은 과연 어떠했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가족간의 불화나 해체의 원인으로 경제난을 들 수
있겠지만 그런 어려움이나 갈등을 극복하고 조정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가족이 힘을 모아 함께 풀어나가야 할 난관
앞에서 서로 비난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에너지를 낭비하다보면 끝내는 절망하고 포기하고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부부나 가족끼리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조정해 나가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운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급격하게 사회가 변화하다보니 세대간에, 남녀간에 가치관의 차이가 너무나 커서 그 간격을 좁혀나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전통적인 가부장의 권위를 내세우는 남편이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아내를 수용하기가 어렵고 민주주의나 인권을 내세우는 자녀들이 무조건적인
순종을 강조하는 부모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런가하면 맞벌이부부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가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만혼이 늘고 출산율이 세계
최저를 맴돌고 있다. 자식들을 위해서 일에 매달리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잘못된 자식들을 고치기 위해 애를 쓰지만 몇 배의 댓가를
지불하고도 치유가 안 돼 고민하는 부모들도 많다. 게다가 그런 문제들을 미리미리 예방하거나 초기에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그 어느
누구도 손을 쓸 수 없는 극단적인 문제로 악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긍정적인 변화도 있어 눈길을 끈다. 아직 소수이기는 하지만 상황이 어려울수록 직원들의 가족을 챙기고
배려하는 것이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투자라고 믿는 친가족적 기업들이 늘고 있다. 그런가하면 집안 일을 분담하고 자녀 교육에도 동참하는
남성들도 많아졌다. 물론 아내의 요구나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겠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를 남성들이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법과 현실은 아직 괴리가 많지만 출산 휴가나 육아휴직, 그리고 직장 보육 시설에 대한 법도 개정이 되었으며 전국의 건강가정 지원센터를 통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상담 활동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다행이다. 부부동반 모임이나 가족단위의 여가와 여행이 늘고 국내 입양이 해외 입양을 앞지른 것도
반가운 소식이다.
흔히 부모님을 모신다고 하면 부양 부담감만을 얘기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사는 장점도 크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돌봐 주는
부모님이 계시고 생활비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아이들의 식성이나 말투, 성품 자체가 좀더 넉넉하고 어른스러워지는 효과도 있다. 게다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했다는 뿌듯한 자부심과 함께 부모님 앞에서 조심하고 예의를 갖추다 보면 부부 사이의 불화가 줄어들기도 한다.
자식을 낳고
키우는 수고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는 자신의 생활을 포기하고 자식들을 위해 끊임없이 희생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이 부모에게 주는
그 참된 기쁨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때로는 자식이 속썩이고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것이 부모가 인생을 살아가야하는 이유나 목표가 되기도
한다. ‘부모됨’을 통해서 인간이 얼마나 더 성숙해지는지는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시대가 바뀌어서 자식들로부터 경제적인 부양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노후에 자식들과의 정서적인 교류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안다면 무조건 출산을 기피할 일은 아니다. 인간은 혼자
살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더불어 살고 싶은 욕구도 크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데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길
권하고 싶다. 물론 그 시간이 얼마나 양질의 시간이고 얼마나 웃음이 넘치는 시간이었느냐가 중요하겠지만 함께 식사하고 텔리비젼 같이 보고 취미나
운동, 여행을 함께 하면서 추억이라는 재산을 늘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긍정적인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두어야 한다. 그래야 사소한 다툼이나 불화
앞에서도 버텨나갈 수 있는 에너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들이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갈등을 줄여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가족이란 갈등도
전혀 없고 부부싸움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복한 가족 또한 갈등을 겪고 비슷한 문제로 고민한다. 다만 그 갈등이나
문제를 대화로 풀어나가는 지혜와 믿음과 사랑이 있기에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살다보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도 많다. 신체적인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 병원을 찾아가 치료를 받고
수술을 하는 것처럼 마음의 병이 생기거나 가족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전문가를 찾아가서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실을 찾거나 정신과를 찾는 것에 대해서 지나친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다. 하지만 이런 편견을 내려놓고 문제가 커지기 전에 미리미리
예방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자세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가정,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업의 지원, 국가적인 제도나 법적인 뒷받침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출산과 육아의 문제는 모성애에, 노인 부양의 문제는 효도라는 이름으로 개별가족에게 떠넘길 일이 아니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지만 공적인 영역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이 겪는 가족 문제가 바로 우리의 문제, 사회문제, 국가의
과제라는 인식으로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야 한다.
가족을 통하지 않고 이 세상에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고 부부가 출발점이 되어 또
가족을 이룬다. 세상이 어렵고 힘들어도, 너무나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따뜻한 말 한 마디로 나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면 이
팍팍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다. ‘가족’이 없는 가정, 진정한 ‘가정’이 없는 가족에게 많은 돈과 좋은 차, 넓은 집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출처] 불광 08년
12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