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유명도
대신 누가 내 이름 석 자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의사를 그만두고 국수집을 하고
미국공인회계사를 그만두고 농사를 짓는 이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 중에서 대기업 CEO를 그만두고 가정문제 상담 및 강의 전문가로 나선 강학중
한국가정경영연구소 소장의 이야기는 단연 으뜸이다. 눈높이 학습지로 유명한 (주)대교출판 대표를 역임하다 ‘아빠랑 밥 좀 먹어보자’는 아이들의
한마디에 ‘그래, 내가 이렇게 바쁘게 살아봤자 뭐 남는 게 있겠나, 가족이 최고지’라며 홀연히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회사에서 제공되는
골프회원권과 자가용과 운전기사가 12시를 맞은 신데렐라처럼 하루아침에 없어졌다. 대신 아침 공기에서 단맛이 느껴졌으며, 아내와 아이들과 살을
부비며 살아가는 날들이 눈물겹도록 소중하게 다가왔다. 후회는? 없다. 단지 예전 모임에 가면 친구들은 모두 운전기사가 와서 모셔가지만 그만은
코트들고 우산들고 가방들고 손수 택시를 잡아서 젖은 옷을 닦아야 하는 불편함 정도. 하지만 이것조차 두 발로 다니는 인간이 누리는 일상의
에너지요, 또 그 불편함이라고 해봐야 일 년에 몇 일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360일은 행복 그 자체. 올해로 퇴사 10년, 연구소를 낸 지
9년. 가정과 일 병행 분야에 있어 한국 남성 중 가장 성공적으로 도를 튼 강학중, 그를 만났다.
무리하지 않는 삶..소소한 일상의 행복 찾아
예전에 신동엽의 러브 하우스에 패널로 출연하시는 걸 본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그 이후로 고정적으로 출연
요청이 와서 요즘도 KBS2 라디오 등에 출연해요. 또 간혹 강의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강의 나가고, 그리고 대부분 이 연구소에서 상담하고
그렇습니다.
연구소 운영은 잘 되는 편이세요?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직원
두 명이고, 사실 제 임금은 없는 셈치고 유지하는 정돕니다. 제가 문을 열면서 다짐한 것이 스트레스 받도록 일을 벌이지 말자, 비서를 둘 만큼
바쁘게 살지 말자, 였습니다. 무리수를 안두죠. 방송이든 강의든 인터뷰든 제 전공과 직결되지 않으면 안 하고, 강의도 되도록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하지 않습니다.
대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으시겠네요?
그럼요. 집이 이 연구소가
있는 건물 15층이에요. 6시 퇴근하면 집에 가서 밥 먹고 강아지 데리고 산책하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오늘도 분당에 강의를 갔다가 친구가
하는 부동산 사무실에 들렀는데, 그 친구는 예전에 손해보험사 지점장 하다 퇴직해 공인중개사 하면서 또 아침저녁으로 농사를 지어요. 글쎄, 그
친구가 닭을 8시간 푹 고아 점심을 했더라고요. 그렇게 고기 뜯어 먹고, 친구 밭의 원두막에 가서 커피 마시고, 오는 길에 친구가 직접 키운
거라며 양배추 한 개랑 토마토 다섯 알 주는데, 그거 들고 오면서 참 기분 좋고 행복하대요.
왜 사회적 직함을 버리고 당시로선 생소한 가정경영이라는 분야를 택하셨어요?
조직의 장이라는 건 때론
모진 결정도 해야 하고 거기다 회의, 결제, 또 무슨 한 말씀 등등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들이 있어요. 반면에 지금은 온전히 내가 다 결정하고
내 삶의 속도를 내가 조정할 수 있는 삶의 주인공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 이유는 당시 제 나이 마흔이었는데 60, 70이 되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해보니까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가정을 주제로 일을 하면 당시 제 고민이었던 가정과 일의 병행이라는 면에서 그 내용도 맞고
또 이런 일이라면 나이 들수록 더 잘할 수 있겠다 싶어 연구소 일을 시작했습니다.
수입이 줄어드니까 불편하지 않으시던가요?
처음 3년간 수입이 없을
거라 각오하고 시작했어요. 그리고 아내랑 얘기하기를 최악의 경우 지금 살고 있는 집 하나 날릴 생각 하자, 3년간 열심히 해보고 안 되면 다른
방향 찾자, 했어요. 그리고 연구소를 하면서 확신이 든 건 수입이 줄어드는 대신 인생에서 돈이 아닌 다른 걸로 적금을 붓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섭니다. 대개의 경우 일로 바빠 자기 인생을 예상하기가 쉽지 않은데 저 같은 경우는 많은 상담을 하다보니까 아, 이 정도 나이되면 이런
문제가 오겠구나, 하며 예상문제집을 미리 가지고 있다고 할까요. 이게 대단한 수입이죠.
가정도 잘 가꾸려는 경영마인드 있어야
가정경영이란 게 무슨 뜻입니까?
제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출판과 경영학을 전공했고 박사 과정은 가족학을 했어요. 가족학을 공부해보니까
세상 살고 부부로 살고 또 자식을 키우는데 일정부분 지식과 소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이런 프로그램을 보면
정말 지극히 상식적인 부분을 놓쳐 아이를 망치는 경우가 많잖아요? 아동들의 발달 시기에 맞는 양육을 부모가 알아야 하고, 부모 스스로도 노년기에
맞게 뭘 준비해야 하는지, 할머니가 되고, 장인 장모가 되고, 시어머니가 되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 알아야 하는 것들이 많아요. 즉 한 기업을
꾸려가기 위해서 경영마인드가 필요하듯 가정도 잘 가꿔가기 위해서 경영마인드가 필요한 겁니다.
흔히 가정의 소중함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요?
가족을 통하지 않고 이
세상에 나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만 3~4세까지 부모와 가족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그 속에서 양육 받고 사랑받은 것이 평생의 밑천이
됩니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만큼 차이가 납니다. 부모가 어떻게 사느냐가 자식에게 영향을 주고 자식은 안
닮고 싶어도 얄미울 만큼 닮습니다. 그 자식이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손자 손녀까지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 그것도 가장 바쁘다는 한국의 아빠들이 모두 소장님처럼 결단하긴 힘들지
않습니까?
그렇죠. 개인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사회적 구조적 문제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무엇 때문에 이렇게 뛰어왔나 돌아보자는 얘깁니다. 또 어떤 부분은 자기 스스로 번잡한 삶을
만들기도 해요. 사회생활 상 인간관계 상 어쩔 수 없이 마시는 술도 있지만, 자기가 좋아서 마시는 경우도 있거든요. 전 술자리에 가면 친한
이에게 미리 ‘나 12시 되면 간다’ 이렇게 말해놔요. 요즘은 그렇게 강권하는 분위기도 아니고 다들 이해해요. 그렇다고 왕따 당하지 않습니다.
남 탓 구조 탓만 하지 말고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바쁜지 잘 생각해보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보면 어떤 부분은 달라질 수
있거든요. 요즘 일하는 엄마들도 마찬가지에요. 육아와 일에 있어 장단점 비교해가며 우선순위를 정하고 손익계산서 짜
봐야죠.
부모로 사는 데 수능점수가 무슨 상관?
소장님께서 자녀 교육에 있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단 책임은 네가 져라. 그리고 반드시 독립해라! 저는 아이들에게 심리적 이유를 지속적으로 합니다. 이유란 이유식 할 때 이유인데, 독립할 수
있도록 미리 예고한다 할까요. 네가 만 30세가 되면 더 이상 우리 집에서 먹고 자고 할 수 없다고 누누이 말하고요, 아침에 늦잠자면 안
깨워줍니다. 지각해서 야단맞아 봐야 스스로 알아서 하니까요. 비오는 날 우산 안 챙겨줍니다. 겨울에 춥게 입더라고 싫다는 애보고 자꾸 많이
입어라 안합니다. 감기 한번 걸렸다고 죽지 않으니까요.
자립능력이 있는 아이랑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가는 아이랑 다른 개념이라고 할까요. 요즘 워낙 교육 열풍이 세니까요. 대부분의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거든요.
그게 함정입니다. 경쟁
사회에 우리 아이만 쳐질까봐 계속 손 붙들고 있으니까 아이들이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질 못해요. 예를 들어 자기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행복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자식과 대학 나오더라도 제 스스로 하는 게 없고 사회 병리 현상의 한 부분이 되는 자식 중 어떤 걸 택하겠습니까? 당연히 전자
아닙니까? 성인이 돼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부부가 살아가는데 수능성적 뭐 이런 거 필요하겠습니까. 상담을 받아보면 심리적 정서적으로
미숙한 어른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부모가 아이와 자신을 따로 떼어 생각하지 못하고 서로 뒤얽혀 키운 탓도 있죠. 하지만 어느 정도 부모가
정상적인 생활만 한다면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믿고 놓아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소장님께서는 부부 싸움 안하시겠어요.
왜 안해요, 하지! 이제
27년째니까 그전보다 훨씬 수가 줄고 피해가는 지혜가 생겼죠. 팍 하면 팍 붙어 ‘동시상영’을 절대 안하죠.
이제 할아버지 역할 공부 해야죠
강학중 소장의 어머니는
예전으로 치면 맹모격이셨다. 가진 것 없는 집안에서 자녀교육을 위해 고향인 경남 진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갖은 고생을 하며 4남매를 키웠고
이들이 오늘의 대교 그룹을 만든 장본인이 됐다. 현재 맏이 영중 씨는 대교그룹 회장, 둘째 경중 씨는 인쇄출판그룹 ‘타라’ 회장이다. 강 소장의
말대로 그의 어머니는 ‘투자종목을 잘 고른 성공한 사업가’인 셈. 하지만 유독 막내 학중 씨가 어머니 애를 태웠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스님이
되겠다고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 버리는 대형 사고를 쳤다. 어머니가 찾아와 눈물로 데려가기를 두어 번. 이후 결혼해 가족과 함께 유학, 그는
늦깎이 대학공부를 했다. 자신의 지난 시절을 떠올려 보던 강 소장은 “당시 내 행동은 출가가 아닌 가출이었다”고 농을 하며 “어쨌든 내게 영적
성장, 내면의 평화를 갈구하는 기질이 있었나 보다”라며 웃음을 보인다.
아이들 일로 속 썩거나 화날 땐 어떻게 하세요?
가능한 삭이고 행동으로
옮기는 건 자제해요. 화가 난 순간 결정을 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되니까. 그거 굉장히 어려운데 연습하면 되요. 그리고 어떤 일로 기분이
나쁘더라도 제겐 15분 시스템이란 게 있어요. 누군가로, 어떤 일로, 내 소중한 시간과 기분을 15분 이상 망치지 않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이에요. 어떨 땐 하루 종일 기분 나쁠 만큼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기도 해요. 하지만 그걸 내려놓으려고 노력을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손해니까. 스위치를 돌리는 연습을 자꾸 하면 전환이 잘 됩니다.
가정문제 전문가가 되기 이전과 지금 스스로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저도 예전엔 가정 경영 이런
거 모를 땐 애 가르친다고 소리 지르고 손 올리고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거 폭력이고 학대에요. 아이가 밤에 우는데 나는 회사일로 피곤한
사람이라고 베개 들고 옆방으로 가버렸어요. 보고 싶은 영화 있는데 아이가 어려 영화관 못가면 저 혼자 가서 보고 그랬어요. 아내가 많이 속상했을
겁니다. 제가 결혼해서 15년을 그렇게 어리석게 살았어요. 그래서 지금 제 얘기를 듣는 분들은 그런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에서 말씀을
드리는 거에요.
행복의 조건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첫째가 마음의 평화, 그
다음이 건강, 그리고 가족. 순위를 매기기엔 어렵지만 마음의 평화가 있으면 건강도 오고 또 이게 되면 가족 내 문제가 다소 있더라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 연구소와 관련해 계획이 있으시다면?
거북이처럼 살고 싶어 이
일을 했는데 달팽이처럼 게으름을 피운 것 같아요. 이제는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을 만들어야 될 시점 같아 가정 경영 관련 책을 낼 계획입니다.
그리고 아동학을 더 공부하고 싶어요. 이유는 앞으로 할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기 때문이죠.
[출처] 우먼라이프 0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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