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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있는 가족, 말이 통하는 가족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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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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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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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화제다. 나도 그 코너를 즐겨보는 편인데 대화가 부족한 가족의 모습을 너무나 극명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 공감이 갔다. 대화에 대해서 강의도 하고 상담도 하고 있는 나에게도 대화는 늘 어려운 과제다. 특히 남의 말을 경청하기는 하면 할수록 어려워 흡사 도를 닦는 기분이 들 때도 많다. 자녀들도 자기 주장을 하다보면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는데 ‘어디 감히 부모에게 버릇없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면 대화는 빗나가고 뒤끝만 안 좋아진 아픈 기억이 있다. 그리고 ‘아빠하고 얘기 좀 하자’고 하면 아이들이 ‘또 무슨 대화냐’고 토를 달아 대화하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나버린 적도 있다. 행복한 가족의 공통점이 대화이며 뭐든지 대화로 풀어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들을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대화가 아닌가 한다.
가족간의 원만한 의사소통을 위해선 무엇보다 친밀감을 먼저 회복해야 한다. 냉랭하고 겉돌기만 하고 벽이 생겨 단절된 가족관계를 따뜻한 사랑이 흐르는 사이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함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식사를 함께 하거나 T.V.를 함께 시청하는 것, 취미나 운동을 같이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행을 함께 떠나서 그 여행을 마음껏 즐기고 돌아올 수 있는 가족이라면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한 기초공사를 마친 거나 다름없다. 친밀감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면 일상적인,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부터 시작해 보자. 그 다음에는 보다 진지한 대화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무엇을 얘기할 것인지, 언제 얘기할 것인지, 어디서 대화를 나눌 것인지 미리 생각을 정리해 두면 큰 도움이 된다.
언젠가 아이들과 아내와의 대화를 위해 자동차를 활용해 본 적이 있다. 어딘가를 함께 가거나, 데리러 가고 데려올 필요가 있을 때, 굳이 대화 좀 하자고 의도적인 자리를 만들지 않더라도 차 안은 대화하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칠세라 설교하고 훈계하고 지적하고 나무라고 평가하는 예전의 버릇이 나와 몇 번인가 그 좋은 기회를 놓쳐버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도전하기로 했다.
한 번은 지방에 강의가 있어 공익 근무 중인 아들 녀석에게 운전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더니 휴가를 낼 수 있다고 흔쾌히 수락을 했다. 차를 타면 늘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틀곤 했지만 그 날은 아들에게 듣고 싶은 CD를 미리 준비하라고 일러두었다. 조금은 시끄럽게 들리는 노래를 아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참고 들어보았다. 그리고 그날 따라 훈계조의 얘기는 한 마디도 없이 강의할 내용을 정리하고만 있었다. 그랬더니 슬그머니 아들 녀석이 말을 먼저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 때까진 늘상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내가 얘기 하고 싶을 때, 내 방식대로 늘어 놓았었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얘기다, 다 널 사랑하고 관심이 있으니까 하는 얘기지. 아빠가 이처럼 감정을 자제하며 얘기하는데 아빠한테 그렇게 불손하게 얘기할 수 있어?’ 항상 그런 식의 생각을 깔고 있었다. 그러나 둘이서 조용히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 다음 최적의 조건을 갖춘 차 안에서 아들 녀석이 하고 싶은 말을 할 때까지 참아봤던 것이다. 한 번의 경험으로 무슨 대단한 수확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관심사에 대해서 얘기하자. 첫 마디는 항상 부드럽게 칭찬과 격려로 시작하자. 비난, 비교, 평가, 불만, 설교, 훈계하지 말자’를 다짐하며 아들 녀석의 얘기에 귀기울였더니 모처럼 대화다운 대화를 한 것 같은 충만감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설이나 여름 휴가, 추석 명절 때 자동차로 먼 길을 떠날 경우, 가고 오는 그 긴 시간을 오로지 길에서 낭비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모처럼 가족간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라고 생각을 바꾸어보자.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돌아가며 들어보고 도대체 어떤 음악이길래 그렇게 좋아하는지 서로의 음악적 취향을 소재삼아 얘기꽃을 피울 수도 있다. 엄마, 아빠가 자녀들만큼 어렸을 때의 실수나 감추고 싶은 얘기를 조금씩 풀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돌아가며 한 곡씩, 즉석 노래방을 만들어도 좋고 어휘력을 높일 수 있는 끝말 잇기로 지루한 시간을 달랠 수도 있다. 가족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들을 하지만 자신에 대한 퀴즈를 서로 내고 답을 맞추어나가는 게임을 하다 보면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얼마나 모르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얼굴을 맞대고 하는 것만이 대화가 아니라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 쪽지나 편지로 주고받는 얘기도 훌륭한 대화다. 이메일이나 편지에 담기에 너무 긴 사연일 경우에는 카세트 테이프나 동영상에 담아 내 마음을 전할 수도 있다. ‘얘기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는 나의 희망 사항일 뿐 십 수년, 몇 십년을 함께 살아도 내 생각이나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침묵이나 과묵을 미덕으로 칭송하던 것도 이제 옛말이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수시로 나의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무조건 참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내가 왜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신경질이 났는지 설명을 해 주도록 하자. 그리고 진정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직접,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다면 웃음이 넘치는 행복한 가족이 되리라 믿는다.
[출처] 한국자동차공업협회 KAMA 저널 2008. 2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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