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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학중의 사는 이야기8 - 떠나보내는 연습, 떠나는 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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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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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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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보내는 연습, 떠나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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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님이 돌아가셨다. 올해 일흔여섯이신 어머님의 막내
여동생이다. 올여름을 나기 힘들 거라는 의사의 얘기가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은 몰랐다.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수술이나 적극적인 치료를
의사도 포기했던 이모님이었다. 그러나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왕성한 식욕을 보이셨고 오히려 폐암을 발견하기 전보다 더 좋아진 얼굴 때문에
현대의학을 뛰어넘는 기적이라는 게 이모님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도 가망이 없다는 얘기를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는 것이 동생의 얘기였지만 이모님은 이미 자신의 병을 알면서도 자식들에게 내색을 안 하신 건지도 모른다. 자식들에게 큰 고생
안 시키고 본인도 큰 고통 없이 잘 갔다고 어머님은 자위를 하셨지만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여든다섯 언니의 심정이 또 어떨까 싶어 가슴이 저렸다.
입관과 삼우제를 함께 하진 못했지만 영결식과 화장, 그리고 납골당에 모시기까지의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며 언젠가는 겪을 어머님과의
이별을 생각해 보았다. 관망실, 분골실, 승화원…… 벽제 화장터에 들어서니 처음 보는 단어들이 낯설었다. 이모님의 관이 화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어머님과 사촌 누님은 또 한 번 오열했다. 두 시간 가까이 되어서야 이모님은 몇 개의 하얀 뼈로 변했고 다시 가루가 되어 유골함에
넣어졌으며 진공 포장되어 사촌 동생의 손에 들려졌다. 납골당에 이모님의 유골을 안치하고 돌아 나오는데 햇볕은 왜 그리도 뜨겁던지……. 칠십육
년의 이모님 인생을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한나절도 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 가족들이 느끼는 충격, 비통,
상실감, 분노 그리고 죄책감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정작 그 일을 직접 당했을 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모님을 떠나보내고 나서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내 전화에, 좀 더 잘해드릴 걸 하는 후회와 엄마가
죽었는데 난 이렇게 살아남아서 잘 자고 잘 먹고 있다는 죄책감 때문에 괴롭다며 사촌 여동생은 눈물부터 쏟았다. 여동생과는 달리 사촌 남동생은
담담하게 전화를 받았다. 울고 싶으면 울고 무엇보다 제수씨와 많은 것을 나누라고, 청하지도 않은 충고를 덧붙이고 통화를 끝냈지만 정작 나 자신은
그럴 수 있을까 싶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건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처음이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갈 때가 된 사람을 저승사자가 데리고 가는 것으로, 고달픈 인생을 정리하고 고통도 눈물도 없는 천국으로 가는 것으로, 아니면 또 다시
태어나는 것이나 심판을 받는 것으로 얘기들을 하겠지만 딱히 뭐라고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3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여섯 살밖에 안 된 고종 사촌이 고모부 어디 가시느냐고 물었더니 어디론가 이사 간다고 대답하시던 외삼촌 말씀이 귀에 생생하다.
부모님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자식의 나이가 서른, 마흔, 아니 일흔이라고 해도 그리 다르지 않은 ‘상실’일 것이다. 한 번도
여든다섯이나 되신 어머님의 죽음을 가깝게 생각해보지 못한 나에게 이모님의 별세와 최근 어머님의 입원은 어머님과의 이별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나의 죽음까지도 상상해 보는 기회를 주었다. 살아계신 부모님 앞에서 죽음을 얘기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짓으로 여기는 문화지만 부모님과 자신의
죽음을 소재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둘째 이모님은 이모부님의 손을 끌고 두 분의 영정 사진도 미리 찍어
놓으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큰 갈등 없이 뒷정리를 잘하기 위해 자신이 떠날 준비와 함께 누군가를 떠나보낼 준비와 연습도 의도적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아직은 고운 우리 어머님, 하루라도 건강하실 때 영정 사진이나 초상화를 준비하자는 얘기를 형님들과 나누어 봐야겠다.
그리고 어머님이 평소에 가장 아끼시고 가까이 두시는 성경책일랑 이 막내아들에게 주고 가시라는 말씀을
드려보아야겠다. |
[출처] 우먼타임스 2006-07-22
[275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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