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사
방송 프로그램을 함께 하던 작가의 요청으로 주례를 서게
됐다. 일반적인 통념이나 나이도 있고 해서 처음엔 극구 사양을 했지만 계속 거절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두 사람에게 과연 무슨
얘기를 해 줄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결혼식 당일, 두 사람의 앞날에도 갈등과 부부싸움 같은 게 있을까 싶을 만큼 신랑 신부는 눈이 부시게
예뻤다.
먼저, 결혼생활은 연애가 아니라 현실임을 강조했다. 새 아파트를 분양받고 들뜬 마음으로 도배를 안 하고
칠도 안 한 채 5년, 10년씩 내버려두면 집안 꼴이 말이 아니듯이 결혼생활은 끊임없이 손질하고 가꾸면서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과정임을
얘기했다. 차려 놓은 맛있는 요리를 먹어 치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먹을 요리를 맛있게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두 번째는 배우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줄 것을 당부했다. 평생을 함께 할 아내와 남편으로 맞아들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장점 뿐만 아니라 단점이나 부족한 점까지도 수용하겠다는 의미다. 나와는 뭔가 다른 매력에 결혼까지 결심을 하지만 결혼 후엔 끊임없이 내
방식을 고집하고 나와는 다른 방식을 지적하고 비난하면서 불씨를 키우는 부부를 많이 본다. 그렇게 20~30년을 살았지만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배우자를 보며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서로 낭비했던가라는 후회만 남기 마련이다.
양가 부모님께도 한 말씀 올렸다. 이제까지는 우리 소연이, 우리 준석이었지만 지금부터는 누군가의 아내와
남편이며 머지않아 누군가의 아빠와 엄마가 될 이 두 사람을 이제 놓아 주시라고, 온전히 떠나보내시라고…… 그리고 이제는 부모님 자신을 위해 남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시라는 말씀을 드렸다. 결혼식장을 가득 메운 친척, 친구, 하객들에게도 한 마디 부탁을 덧붙였다. 설사 서운한 점,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하는 일이 아니라면 널리 이해하고, 참고 지켜봐 줄 것을 당부했다. 그것이 진정으로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해
주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그 날 신랑 신부에게 한 얘기는 나 자신에게 하는 얘기이기도 했다. 뭘 몰라도 한참을 모르고
시작한 결혼이 이제 25년,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나의 결혼생활이 뒷받침되어야 내 주례사가 더욱 설득력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장) [출처] 좋은생각 200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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