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결혼식이 있어 고향을 찾았다. 고향을 떠난 지 40년이 다 돼가지만 아버님 산소를 매년 찾았기 때문에 낯설진 않았다. 모처럼의 화창한 날씨에
봄꽃마저 화사해 눈이 부셨다.
결혼식장에 들어서니 비좁은 로비는 하객들로 가득 차서 다니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축의금을 내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이 한국의 전형적인 결혼식 문화를 보는 것 같았다. 신랑은 손님들을 맞느라 바빴지만 하객들은 대부분 부모님의 지인이고 신부도
신부대기실에 있어 신부 부모님만 인사하기에 바빴다.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되고 식 진행을 돕는 도우미들이 화촉을 밝히는 양가
어머니들을 안내하는데 그들의 복장이 고적대 유니폼과 비슷해 이건 또 어느 나라 풍습인가 싶었다. 하객들이 떠들어 주례사에 집중하기 어려운 것
말고는 별 무리 없이 결혼식이 진행되는가 싶었는데 마지막 신랑 신부의 행진을 앞두고 사회자의 진행 때문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신랑에게 신부를
안아보라고 하더니 웨딩드레스 때문에 그것이 여의치 않자 신랑의 체력 테스트를 한다며 팔굽혀펴기를 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곤 신랑에게 구두를 벗게
하더니 하객 가운데 누군가로부터 5만원을 얻어 오라는 과제를 내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가 황급히 구두에 돈을 채워주어 어색한
분위기는 금세 진정되었지만 신랑 신부에게 “땡 잡았다” “봉 잡았다”로 만세 삼창을 강요하는 대목에서는 어르신들의 얼굴 표정이 편치 않아
보였다. 조금은 진지하게 결혼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자리였으면 하는 바람이 사회자의 장난기로 희석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꼭 그날의 결혼식만이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여러 단짜리 케이크를 자르고 샴페인으로 건배를 하는 순서가 삽입되어 뒷맛이 개운치 않은 적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눈도장만
찍고 정작 결혼식은 보지도 않고 바로 식당으로 향하는 하객들이나 즐비한 화환들로 뭘 과시하는 듯한 결혼식장 풍경은 씁쓸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된 모습도 있어 위안이 된다. 축의금을 아예 받지 않고 평일 저녁 시간대로 결혼식을 잡는다든지,
여성이 주례를 맡거나 신랑신부가 동시 입장을 하고 양가 부모님이 함께 폐백을 받거나 하는 예가 그렇다. 축의금 대신 쌀을 기증받아 불우 이웃을
돕는 모습도 보기에 좋았다. 가까운 가족들끼리만 모여 조촐한 결혼식을 끝내고 나중에 주위 사람들에게 인사를 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제 우리의 결혼식 문화도 조금은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결혼식의 주인공이 부모님이 아니라 신랑 신부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태도부터 지양해야 할 것이다. 전혀 도움 받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하기는
벅차다면 일정 부분을 본인이 부담하거나 본인의 능력 범위 내에서 검소한 결혼식을 치러야 할 것이다.
설사 결혼비용을 부모가
지원하더라도 예식에 관한 한 결정권과 선택권을 당사자들에게 준다면 호화로운 결혼식이나 무조건 크고 비싼 혼수를 고집하는 경향은 줄어들지 않을까.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과 신혼여행이라는 명분 때문에 무리를 할 게 아니라 언제라도 두 사람이 사랑을 안고 떠나는 여행이라면 그것이 신혼여행이
될 수 있다는 쪽으로 조금만 생각을 고친다면 뜻 깊고 실속 있는 추억 여행이 될 것이다. 신랑 신부의 출신 학교와 직업 소개로 시작되어
천편일률적인 덕담으로 이어지는 주례사가 아니라 양가 부모님의 당부와 신랑 신부의 각오 등으로 좀 더 의미 있고 독창적인 결혼식도 창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결혼식 문화가 하루아침에 달라지진 않겠지만 순수하고 건강한 시도들이 하나 둘씩 모여 바람직한 결혼식
문화가 뿌리내리리라 믿는다. 멀지 않은 우리 아이들의 결혼식부터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조금은 남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