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화해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아들 녀석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도 없었다.
내가 휴대 전화로 연락을 해도 급히 전원을 꺼놓고는 받지 않았다. 새벽 1시가 다 되어 술
냄새 를 풍기며 들어오는 녀석에게 왜 전화를 받지 않았느냐고 대뜸 고함부터 질렀다. 그랬더니 녀석은 전화가 온 줄
몰랐다고 했다. 12시가 넘으면 전화한다는 약속을 왜 지키지 않았냐고 따졌더니 배터리가 나가서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친구 전 화기로 연락할 수 있지 않느냐는 말에도 친구들이 휴대전화를 모두 두고 와 어쩔 수 없었다며 꼬박꼬박
말대답이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어쩌지 못해 어디서 거짓말이냐고 뺨을 한 대 올려붙였더니 이 번에는 왜 때리느냐며 눈을
부라리는 것이 아닌가. 어디 애비 앞에서 버릇없이 눈을 치켜뜨냐고 다른 쪽 뺨을 한 대 더 올려붙였다. 도저히 대화가 안 될 것 같아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고 돌려보내자 제 방문을 보란 듯이 쾅 닫아 버린다. 다시 아들 녀석을 불러 세워 혼을 내고 싶었지만 끓어오르는
화를 어렵게 내리눌렀다. 내가 아들 녀석 나이 때쯤에는 상상하기도 힘든 불손한 태도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고함부터 지르고 아들 뺨을
때린 내 행동도 잘한 짓은 아니었다. 다음날 아들을 불러 앉혀 놓고 대학생이나 되는 자식의
따귀를 때린 내 행동에 대해서 사과부터 했다. 그리고 귀가 시간에 대한 우리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내가 왜 그렇게 화가났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여전히 볼멘소리였지만 아들 녀석도 용서를 빌었다. 아빠 전화인 줄 알고도 일부러 전원을 꺼버린 점, 발신 전화번호를
몇 번이나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무시한 점, 아빠에게 대든 점 등.
아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아들이
자기의 의견이나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언성을 높일 때가 있다. 난 그것을 무조건 버릇없는 행동이라고 몰아붙였으니 더러는 억울하기도
했을 테지 싶었다. 애비도 잘못했으면 상대가 자식일지라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 옮은 일일 것이다. 그것이 애비의 권위를
떨어뜨리거나 채신 없는 태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부부나 부모 자식 사이라도 무조건 권위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고 그 화해의 손을 조건 없이 맞잡아 주는 것. 그것이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좋은생각 2006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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