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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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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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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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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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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어느 날 아내가 잠자리에 들었는데 왠지 몸이 으실으실 추워지는 것이 양말이라도 신고 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일어나서 양말을 챙겨 신는 것은 귀찮아 나에게 양말을 좀 신겨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서랍장에서 양말을 꺼내 두 말없이
신겨 주더라는 것이었다. 따뜻하게 잘 자고 일어나니 얼마나 고맙던지,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자 자기를 쳐다보는 내 눈빛이
또한 그윽해서 더욱 좋았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런 얘기를 여자들 모임에서 했더니, 자기 남편은 대꾸도 안 하거나 정신
나갔느냐고 핀잔부터 줄 것이라는 얘기가 압도적이었다며 놀라와 했다. 그런 조그마한 배려가 그렇게 큰 기쁨이었다면 열 번, 백 번이라도 신겨
주겠다고 하자 아내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하지만 난 내 과거가 부끄러웠다. 신혼 때도 혼자 영화 보러 다니고 애 우는 소리에 잠
못 자겠다며 베개들고 옆 방으로 가 버리는 이기적인 남편이었으니…… 아내와의 약속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고 집안 식구들 있는 데서 아내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일은 생각조차 못 하는, 외출 때에 아내가 내 손을 잡으면 이 손을 언제 빼야 하나 고민하던 그런 남편이었다.
그러던
사람이 가족학을 공부하고 가정경영연구소를 꾸려가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부부가 뭔지, 남편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여성들이 어느
때 서운해 하고 무슨 일로 상처를 받는지 조금씩 눈뜨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내가 말을 걸어 오면 신문을 접거나 텔레비전에서 잠시 눈을 들어
아내를 쳐다보며 아내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위해 다른 약속은 그 시간을 피해서 잡았고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화해를 요청했다. 그리고 아내를 안아 주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구두나 이메일로 또는 문자 메시지로 자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내가 싫어하지 않는 장난으로 좀더 가까운 친밀감을 유도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 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아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고 한다.
20년 넘게 30년 가까이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남녀지만 비슷한 음식을 먹고 한 지붕 밑에서 살면서
올림픽이나 IMF위기, 월드컵 축구나 미국의 9.11 테러, 탄핵 정국 같은 동시대의 사건을 겪으면서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부부는 닮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인간 관계 중에서 부부 사이만큼 지속적이고 은밀한 관계가 또 있을까 싶다. 자식이 아무리 소중하다고 해도 서른을
넘기며 제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다보면 부모를 잊기 마련이다.
요즈음은 인간의 평균 수명도 끊임없이 늘어나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두
부부만 남는 경우에는 더욱더 배우자의 존재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돈은 많지만 노후를 함께 할 배우자가 없어 자식들 눈치 보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노인들이 있는 반면 경제적으로는 그리 넉넉치 않지만 두 사람의 우애가 남달라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부부도 있다. 속 썩이는 자식문제나
갖가지 문제에도 지혜롭고 효과적으로 대처 할 수 있는 기본 에너지가 바로 부부이기 때문이다.
저만큼 와 있는 올해의 끝자락,
아내와 함께 2005년을 어떻게 보낼까를 궁리하다 ‘책 50권 읽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리고 결혼 25주년에는 멋진 신혼여행을 다녀오자고
약속했다. 아이들이 속을 좀 썩이고 양가 집안의 문제로 속 끓이는 일이 있거나, 건강이 젊었을 때 같지 않더라도 우리 두 사람의 사랑에 이상만
없다면 그것이 바로 모든 시련과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는 원동력임에 서로 이의를 달지 않았다.
내가 혹시 먼저 죽으면 좋은 사람
만나 잘 살라고 했더니 자기는 절대 나의 재혼을 허락할 수 없다고 해서 또 한번 웃었지만 사별과 죽음까지 화제로 삼을 수 있는 대화가 있고
대화가 통하는 부부이고 싶다. 내 다리로 걸을 수 있고 내 귀로 듣고 내 눈으로 보고 내 치아로 씹을 수 있는 건강 유지하면서 서로 등 긁어주고
손 잡고 산책하면서 서로의 지팡이가 되어주자고 다짐했다. 결혼 초기에는 뭘 몰라 아내 속을 썩이고 애간장도 태우게 하고 눈물도 흘리게
했지만 나날이 성장해 가는 부부, 서로의 성장을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부부, 부부 공동의 꿈과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물 주고 거름 주고 정성들여
가꾸는 부부이고 싶다.
[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디어 패밀리 2004년 12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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