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원정대의 깃발이 나타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카맣게 그을린 다리와
얼굴에서 유독 이만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아프리카팀 속의 딸아이를 발견하는 순간, 뭔지 모를 뭉클한 것이 올라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포항을
출발해 속초, 간성, 양구, 평화의 댐을 지나 연천, 문산, 임진각을 거쳐 서울에 이르는 35박 36일, 850Km를 걸어온 국토 원정대가 그
마지막 날, 부모와의 동행을 위해 서울에 입성한 것이다.
스스로 고통과 시련을 선택한 아이
딸아이는 이미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두 차례의
국토 횡단과 종단을 마치고 중 3이 되어서는 가족 국토 횡단까지 경험했다. 하지만 35°C를 오르내리는 10년만의 폭염과 장마 속에서의 원정은
대학생이 된 딸아이에게 또 한번의 극한 시련이자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맙게도 제 스스로 신청하고, 이겨내고, 완주까지 해주었으니 부모로서
대견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두 차례의 심한 설사로 쾡한 얼굴에 까맣게 그을리기까지 한 아이의 얼굴은 얼른 알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먹는 것과
잠자리의 불편함은 당연하게 이겨낼 수 있었지만, 계속되는 찜통더위에 하루 30Km의 행군과 목마름은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긴 행군
뒤 잠깐의 휴식, 그리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한 줄기에도 참 행복했고, 오르막길 뒤의 내리막길이 주는 편안함도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
누군가 구파발에서 시청까지 함께 한 원정대원들과의 행군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35일을 걸어온 아이들도 있는데 하루쯤이야
못 버티겠느냐’고 대답했지만, 이미 더위에 지쳐 힘들어하는 부모들도 있었다. 이렇게 어른도 힘들어하는 것을 본인 스스로 선택해 귀중한 경험과
추억을 쌓고 돌아온 아이가 또 한번 자랑스러웠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 획득과 많은 친구들과의 사귐, 그리고 우리 땅,
우리나라에 대한 사랑까지 얘기했을 때 난 아이를 믿었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지혜로운 용기와 힘을 선물하자
달걀 하나, 자장면 한 그릇에도 참 행복해
했던 우리들과는 달리, 요즘 아이들은 결핍과 고통을 모르고 자라는 세대다. 부모 덕으로 배고프고 힘든 것, 춥고 더운 것을 모르는 편하고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컵라면과 전화 한 통이면 허기를 달래 수 있는 세상에서 자라니 결핍과 고통, 기다림은 요즘 아이들과 상관없는 얘기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식들을 우상처럼 떠받들며 공부만 잘 하면 모든 의무에서 면제해주고, 대신 결정해주고 선택해주고 고통까지 짊어지고 있으니
아이들은 고민할 필요도 없고 감사할 줄도 모르는 것이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부모가 수강 신청을 대신해주고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학점까지
따져준다고 하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부모의 절대적인 보호 밑에서 영원히 편안하게 살 수도 없고 부모 또한 자식들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부터 우리 아이들에게 ‘고통과 시련을 주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 고통과 시련을 지혜롭게 이겨낼
‘용기와 힘을 주십사’하고 기도할 일이다. 더위와 추위를 느껴가며 참고 이겨내는 힘도 길러주고 한 끼 정도는 스스로 해결하는 솜씨도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 아이들의 필수품이 돼버린 핸드폰도 왜 필요한지, 꼭 필요한 핸드폰이라면 자기 돈을 보태서 사거나 통화 요금은 아껴서 스스로
해결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리고 훗날 결혼 비용도 스스로 준비하게 하고, 혼수나 방 한 칸도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마음가짐을 지금부터 길러 줄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 공부시켜 주는 것까지는 의무를 다 하겠지만, 그
이후의 인생은 너희가 알아서 꾸려가라고. 그리고 만 30세까 넘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든 혼자 살든, 그것은 너희들이 알아서 선택해야 할 삶의
방법이지만 무조건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는 보살핌에서 벗어나 내 집을 좀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이를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모진 마음이
필요할 것 같아 스스로에게도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아내와 공동 노선을 확인하는 이유는, 진정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주)대교 edupia사보 2004년 9,10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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