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지금과는 다른 나를 찾는 변화된 삶을 꿈꾼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쉽사리 새로운 삶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리고는 가족이나 학교, 사회에 맞추어
"이것이 최선이야"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살아간다.
현재 한국가정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강학중 님은 몇 년전 중년의 나이에 과감히 나를 찾아나서는
용기있는 선택을 했다. 당시 그는 (주)대교의 대표였다. 1억에 가까운 연봉과 고급 승용차와 운전사, 비서, 스포츠 센터 회원권 등 풍족한
생활이었지만, 밤낮으로 이어지는 바쁜 스케줄 속에서 자신의 꿈과 가치,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잃어갔다.
"자연스럽게 내가 제대로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을 조금씩
그려갔습니다. 앞으로 평생 할 수 있으면서도 내 적성에 맞는 일. 이렇게 범위를 좁혀 가니 가정으로 결론이 나더군요. 어릴 적부터 가족의 화목을
강조하셨고 가정이 바로서야 모든 일이 잘 된다고 말씀하시던 부모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내면을 탐색한 결과, 그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과감하게 자신만을 위한 하프 타임을 갖기로 했다.
문제는 가족이었다. 물론 평소에 아빠 얼굴 자주 못 본다고, 식사 한번 같이 하기 힘들다고 불평이
대단했던 아내와 아이들이었지만, 가장이 직장을 그만두고 당분간 개인적인 휴식을 취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해 줄지가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결심을
말하는 그에게 아내는 선뜻은 아니지만 곧 당신이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며 같은 편이 돼 주었다. 아이들은 늘 자신이 너희들이 정말 원하는다면
그것을 하라고 가르쳤던 말을 되돌려 주었다. "아빠가 하고 싶은 일이면 우리도 좋아요"라고 오히려 격려까지 해 주었다. 바쁜 생활 중에도
가족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고, 이를 통해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2년 간의 휴식기를 가졌습니다. 그동안 수입이 전혀 없을 것을 예상해서 미리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에 집을 좁혀 이사를 했고, 자동차도 없이 살았습니다. 사실 그전에도 사치나 낭비를 하면서 살았던 건 아니지만, 그때는 경제적으로 아주
기본적인 생활 정도만 했죠. 그런 걸 생각하면 아내와 아이들이 정말 고마워요."
그렇게 한동안 집에서 쉬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어색했다. 매일 출근하던 사람이 낮에도 집에 있으니
아파트 수위가 이상하다는 듯 보는 것도 그렇고, 아내가 외출할 때마다 자신의 식사 한 끼 때문에 걱정하는 것도 미안했다. 또 일이 있어 사람을
만날 때 명함이 없다는 것도 불편했다. 이런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은 내가 선택한 일을 위해서라면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가정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가정을 화두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하고
여러 방면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또 지금까지 해 보지 못했던 것도 힘이 닿는 대로 다 해 보았다. 가족들과 14박 15일의 일정으로
서울부터 동해안까지 걸어서 여행을 했고, 바빠서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던 아이들의 졸업식과 입학식에도 가 보았고, 시간이 없어 가까이 하지
못했던 책도 마음껏 읽었다.
그렇게 2년간 두문불출 하면서 공부한 끝에 2000년에 드디어 가정과 대학에서 전공했던 경영학을
접목시킨 가정경영연구소를 삶의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적지 않은 나이지만 가족학 공부를 위해 경희대대학원에 입학해 몇 년간 노력한 끝에
박사과정을 마쳤고, 이러는 사이 그는 가정학 전문가가 되어 당당하게 대학에 출강까지 하면서 인생의 후반전에 박차를 가했다.
"지금, 정말 행복합니다. 드디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고, 그 일로 경제적인 생활까지 할 수
있으니 어떻게 더 이상 좋을 수 있겠습니까."
가정을 연구하는 일이라 노년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그의 가슴속에는 어느 때보다 밝고 뜨거운 열정이 피어오르고 있어 겨울의 추위를 걷어내고 봄을 재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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