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야 먼저, 합격을 축하한다. 이제 네가
대학생이 되는구나. 애썼다. 그리고 지난 부부 송년 모임 때, 집 치우고 유리창 닦고 엄마·누나와 함께 부엌에 꼬박 붙어 서서 음식 나르느라
고생한 것,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구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감동했다고들 하셨지만 무엇보다 내가 너무너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단다.
그동안 좀더 너와 많은 대화를 못 나눈 점, 그리고 너의 의견을 얘기하고 네 주장을 펴는 것을 버릇없이 말대꾸한다고 오해한 점은
아빠가 사과하마.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식도 흥분하고 화낼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 못한 것 같구나.
이제는 나보다 키가 더 커
헬스 클럽으로 운동하러 갈 때에는 네가 아빠의 보호자처럼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아빠 옷 좀 빌려달라고 부탁할 때는 이제 내 아들이
커서 옷도 나눠 입을 수 있게 되었구나 싶어 무엇보다 기쁘단다. 독수리 타법을 아직도 못 벗어나, 자주 네 신세를 져야할 때, 손재주가 없어 뭘
고치는 것도 네 도움을 받아야 할 때, 미안한 한편으론 자식 키워 놓으니 좋은 것도 많다는 대견스러움에 즐겁기도 하단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
없는 용돈에 아빠 운동화까지 사 주다니, 고맙구나 바다야.
이제 대학생이 되는 너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사람이 진정한 성인인지 그리고 어른이 되면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를 명심했으면 하는 거란다. 이제까지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나
성적, 컴퓨터와 게임 같은 것으로 별로 유쾌하지 않은 대화가 오갔다면 이제는 술과 귀가시간, 여전히 부족한 용돈과 이성교제 같은 문제로 입씨름을
벌일 일이 생기겠지. 언젠가는 우리 품을 떠날 너이기에 언젠가는 모든 것을 네 결정에 맡기겠지만 어떤 것은 아직도 엄마, 아빠 의견을
따라주었으면 한다.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는 이제 어른 못지 않지만 심리적, 사회적으로 법적, 도덕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네가
어른이 아니기 때문이지, 네 주장을 펴고 너의 권리를 강조하는 만큼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만 명심해주렴.
바다야, 새해의 해가 떠
올랐다. 2004년은 너에게 유난히 중요하고 의미 깊은 365일이 되겠지? 네 인생에 있어서 둘도 없는 황금기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네
인생의 전환점이 될 거다. 그 365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5년 후, 10년 후의 네 모습을 그려보며 밤새워 고민해
보아라.
바다야, 오늘은 문득 네 아빠의 아버지,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는구나. 내가 고2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막내 아들의
술 한 잔을 못 받아보시고 돌아가신 셈이지, 바다야, 대학 들어가면 아빠와 함께 술도 한 잔 나누자. 그리고 이제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는
친구같은 아빠와 아들로서, 매일매일 성장하는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