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참여
몇 층 집 아이인지, 세 살이나 네 살쯤 되었을까, 꼬옥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녀석이었다. 자기를 빤히 쳐다보는 아저씨가 조금은 이상했는지 엄마와 아빠 뒤로 숨는 녀석의 작고 조그만 주먹을 살그머니 쥐었더니 낯이
설었는지 슬쩍 손을 빼버렸다. 12층에서 그 녀석이 내리고 엘리베이터에 단 둘만이 남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는 나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귀여우면 쳐다만 볼 것이지 남의 아이를 그렇게 만지는 거, 그 부모가 싫어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요즈음 어린 아이들을 보면 유난히 예뻐 하며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나에게 ‘이제
손자 볼 때가 되었나 보다’고 아내는 농담을 건네지만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그 시절이 후회스러워 한편으론 씁쓸할 때가 있다. 정작 내 아이들이
저만큼 예뻤을 때 나는 피곤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애비 노릇을 제대로 못한 건 아닌가, 그리고 아이 키우는 일은 여자 일이니 내 알 바 아니라는
이기적인 남편은 아니었던가 싶어 아이들과 아내에게 무척 미안하다. 이제 다시 우리 아이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오면 참 좋은 할아버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착각일는지…
‘좋은 아버지’ 로
거듭나기
요즘 ‘아버지 노릇’ 이 가끔 화제가 되고 있다. 남자가 한 평생
수행해야 될 아들.남편.아버지.사위.동생이나 형.오빠.직장인. 친구 역할 등등 수많은 역할 중에서도 아버지 역할이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아버지 노릇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체계적인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남자들로선 아버지가 되는 것은 선택할 수 있지만 아버지이기를 포기하는 것은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장의
그림은 고칠 수도 있고 찢어버릴 수도 있지만 아버지 역할은 연습해 보고 수정하고 다시 시도해볼 수 있는 그런 성격의 일이 아니기에 더욱더 어렵고
중요한 것이다. 게다가 아이들이 크면 어머니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 자녀들이 올곧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버지 역할이 절대적이다.
그렇다면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녀 성장에 따른 아버지
역할
무엇보다 좋은 남편이 되어야 한다.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부모가 만들어내는 집안 분위기는 자녀들에겐 환경이며 성장을 위한 토양이 되기 때문이다. 부모가
서로 헐뜯고 싸우는 환경 속에서는 아이들이 공부해 전념할 수 없을 뿐더러 즐거운 학교 생활과 원만한 교우관계도 바라기 어렵다. 그리고 자녀교육에
대한 의견과 태도를 부부가 통일할 필요가 있다.양육태도가 다르다 보면 자녀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으며 일관성 없는 부모의 태도 때문에 아이들이
눈치를 보거나 자기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이용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발달단계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도 중요하다.자녀들을 바르게
키우는 데에 끊임없는 관심과 순수한 사랑만큼 더 좋은 것은 없겠지만 자녀 양육에 필요한 지식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아이들이 한두 살일
때와 초등학교 입학할 때의 아버지 역할은 다른 것이며 그 아이들이 사춘기를 맞을 때와 고3 수험생이 되었을 때 아버지 노릇은 또 달라지는
것이다. 그때 그 때 아이들의 욕구와 관심, 고민이 무엇인지, 발달상의 특징과 유의점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면 자녀와의 갈등을 예방하거나 줄일
수가 있다.
아버지는 행복한 가정의
출발점
하루 종일 직장 생활로 지치고 힘든 몸으로, 집에 까지 와서 또 애들과
놀아 줘야 하느냐고 불평을 하는 아버지들도 있지만 자녀교육에 아버지가 동참하면 어떤 이점이 있는지를 몰라서 하는 얘기이다. 모성애는 타고 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며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같이 노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부성애 역시 모성애 못지 않다는 연구 결과들이 그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오히려 전쟁 같은 경쟁사회에서 상처 받고 지친 몸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을 통해 아버지 역시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져
치유 받을 수도 있고 그런 시간들을 통해 발견한 감성들을 직업 세계에서 다시 활용할 수도 있다. 나날이 커가는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느끼는
기쁨과 행복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이며 그런 시간들을 통해 맺어진 부자지간, 부녀지간의 끈끈한 정은 중년과 노년기에 찾아드는
소외감을 치유해 주는 특효약이기도 하다. 자식은 조금씩 소원해지는 부부관계를 맺어주는 끈이 되기도 하고 기업과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력으로서
부모의 도덕적 책임을 다하게 해주는 요소 이기도 하다.
특히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바람직한 성역할의 모델로서 그리고 도덕적인
판단과 대인관계의 기술을 전수해 주는, 세상과의 연결 통로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버지는 그 자녀들이 다시 만들게 될 제2, 제3의
가정,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의 출발점이기에 아버지의 육아 참여는 최고의 수익률을 보장해 주는 매력적인 투자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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