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나이 마흔을 ‘불혹’(不惑)이라고 한다. 역동적인 청년기를 접고
이제는 안정으로 돌아서는 시기며 이루기보 다는 지키면서 살아가는 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6년 전 불혹의 나이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회적 지위를 버리고 새로운 세상에 도 전장을 내민 남자가 있어 화제를 모았다.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장(47).
‘눈높이
교육’으로 유명한 (주)대교의 대표이사로 고급승 용차에 운전사, 비서를 거느리며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그가 사표를 던진 이유는 ‘늦기 전에 나와
내 가족에 충실하고 싶어서’다.
회사 를 나온 이유가 새삼스럽게 가족인데다 앞으로의 계획이라곤 ‘당분간 실업자 생활’이었으니
어머니와 형(대교 강영중 회장)을 비롯한 많은 사 람들은 “네가 아직 세상 뜨거운 맛을 못 봐서 그렇다”며 결사반대했다.
▶ 재벌 사장도 저 싫으면 그만
그러나 옛말에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고 했던가. 강 씨에겐 ‘재벌사장도 저 싫으면 그만’이었다. “이제 뭐 할 거냐”고 집요하게 묻는 사람들에게
조심스 럽게 ‘가정과 관계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던 그는 이듬해 가족이 함께 떠난 1년간의 영국유학에서 그 생각을 구체화했고 2000년 1월
1일 ‘한국가정경영연구소’(www.home21.co.kr)라는 형태로 자신의 꿈을 실현시켰다.
이제 연 구소를 오픈한 지 3년 남짓
되었지만 그는 매일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확인하고 있다. 연구소는 예약 없이 상담받기 힘들 정도 로 도움을 청하는 이들이 많고 지방에서는
강연요청이 쇄도한다. 가정에 대한 인식변화를 반영하듯 그가 강의하는 경희대 ‘결혼과 가족’ 수업은 캠퍼스 커플들은 물론 1학년에서 4학년
학생까지 몰려와 붐빈다.
그는 가정을 ‘경영’의 대상으로 본다. “경영하면 주로 기업을 떠 올리지만 기업경영의 원칙과 방법들을
가정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화목하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보 다 체계적, 계획적으로 가정을 경영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 가정도 ‘경영’
대상
연구소는 부정적인 측면과 병리적인 측면 에 초점을 맞춘 이제까지의 연구와 달리 대다수 건강한
가족들의 공통점과 특성을 밝혀내 문제 가정의 치료보다는 사전에 문제를 예방하는 것 에 목표를 둔다. 또 그는 가족 중에서도 가족의 핵이요
출발점인 부부 문제에 우선순위를 두는데 “화목한 부부는 자녀들에게 훌륭한 모델이 될 뿐 아 니라 가장 자연스럽고 좋은 자녀교육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건강한 가족경영을 위해 주로 홈페이지를 통한 정보제공과 사이버 부부상담을 하고 있으며
기업체·대학교에서의 강연, 남편들을 위한 부부생활 향상 프로그램 및 부부대화법 등의 교육 의 실시하고 있다. 또 ‘부부의 날’, ‘좋은 남편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 부부와 가족들 위한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도서 출판도
계획하고 있다.
▶ 서울-동해 간 가족
도보여행
자나 깨나 가정 을 생각하는 그의 모습에서 ‘세상에 이런 아버지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그 역시 가족보다 일이 우선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언젠가 아빠에게 가장 바라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은 “밥 좀 같이 먹었으면
좋겠다”고, 아내는 “저녁 먹을 때마다 이웃에서 ‘저 집엔 아빠가 없나봐’ 할까봐 블 라인드를 쳤다”고 말해 충격을 받았었다고
고백한다.
사표를 낸 후 그는 가족과의 시간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48평 아파 트를 전세주고 33평으로 이사하는 일을
아내와 함께 했고(결혼 이후 16번의 이사를 했지만 그가 이삿짐을 직접 싼 것은 처음이었다) 딸 시내 (22)와 아들 바다(19)의 등·하교며
과제물도 직접 챙겨줬다.
그러나 무엇보다 1998년 서울에서 동해까지 14박15일의 가족 도 보여행이 큰 몫을 했다. 처음으로
가족과 꼬박 보름을 함께 하는 동안 그는 미처 몰랐던 아이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중간에 그 가 발목을 삐어 힘들어하자 아빠 몰래 짐을
덜어간 아이들에게 가슴 뭉클한 사랑을 확인하기도 했다.
“가정이 소중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가정의 화목을 위해
그만큼 투자하는 사람은 드물지요. 주5일근무제의 확대로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라고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는 사람들이 있는데 가족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올바른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는 이상 갑자기 늘어난 휴일은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 도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가족구성원들의
건전한 ‘대화’와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인터뷰 내내 싱글벙글한 남자. 중년남성에게서 보기 힘든, 억지로는 절대
자아낼 수 없는 그의 환한 웃음을 보고 사진기자가 표정이 너무 좋다는 인사를 건네자 그는 선뜻 답했다.
“행복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