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문제, 사회문제
인기 개그우먼 L씨가 남편에게 야구방망이로 폭행당한 사건이 화제가 됐었다. 성공한 여성으로 TV
화면에서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던 L씨가 오랫동안 남편으로부터 그렇게 맞고 살았었다는 뉴스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가정폭력이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했다. ‘여자가 맞을 짓을 했겠지’, ‘오죽하면 여자를 그렇게 때렸을까’아니면‘지 마누라 지가 패는데 누가
간섭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자기 자식, 때려서라도 버릇을 들이려는 부모의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아동학대가 방치되고 설마
친아버지가 딸을 성폭행까지 했을라구’라는 편견과 가족들의 체면 때문에 가족간의 성폭력도 문제화되지 않았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벌지 않으면 안 되는 맞벌이 시대가 되면서 직장과 가정, 어느 한 쪽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여성들이 과중한 역할 부담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아이를 키워 줄 시어머님이나 친정 부모도 없고 마땅히 아이를 맡길 보육 시설도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가 24시간 탁아 시설이나 야간 탁아
시설, 시간제 탁아 시설이나 장애아나 영아를 맡길 시설 등,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시설은 전무한 실정이다. 설사 그런 시설이
있다고 하더라도 비용이 만만치 않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 저소득층 부모들로서는 이중의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늘어만 가는 노인
인구도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효도라는 이름으로 노인 부양을 개별 가정에만 떠맡기기에는 각 가정들이 떠안아야 할 부담이 너무 큰
것이다. 부모님을 안 모시고 싶다거나 불효막심한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부부가 다 일을 가지고 있거나 주거 환경이 여의치 않을 때, 게다가 부모님이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불치병 또는 치매라도 걸리게 되면 어떤 자식이라도 그 무게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비행 청소년
문제, 알콜 중독, 약물 중독 및 향락문화의 범람, 날로 늘어만 가는 외도와 성범죄 등은 이제 한 가정이 해결할 수 있는 수위를 넘어선지
오래다.
잘못 뿌리내린 향락 문화의 여파로 이제 직업여성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내, 우리의 딸들이 희생양이 되는
끔찍한 부메랑’ 현상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변화와 함께 가정과 가족을 둘러싼 환경도 급격하게 변해가는 발전적인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가출, 별거, 이혼 등으로 이어지는 가족 해체와 가정의 붕괴는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개인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정은 사회의 영향을 받지만 또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이 사회를 이루는 기본 벽돌이기도 하다.
위에서 얘기한 가족 문제들이 나아가서는 사회 문제가 되고 국가 문제가 되듯이 IMF로 인한 실직과
노숙자, 늘어만 가는 차량과 교통사고, 통신 수단의 발달로 인한 인터넷 중독과 채팅 중독, 그리고 대구 지하철 참사로 인한 가족의 해체 등은
사회 문제가 가정과 가족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사례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문제를 이제 더 이상 그 가족만의 문제로 방치하지 말고
이 사회와 국가가 그리고 이웃이나 기업이 관심을 갖고 미리미리 예방하고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발생한
후에 대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느라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고도 근본적인 문제를 미결 상태로 남겨두는 악순환을 반복하지 말고 무엇보다 예방에 힘써야
한다.
그 예방으로는 뭐니뭐니해도 청소년 교육, 결혼 준비 교육이나 부부교육, 부모교육, 그리고 노후대비 교육
프로그램이나 실직가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미리미리 준비하는 태도와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 지름길이라 하겠다. 그리고 문제가
심각해져서 손을 쓸 수가 없는 지경으로까지 악화되기 이전에 적절한 상담과 부부 치료, 가족 치료를 통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또한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가족문제가 곧 사회문제이고 건강한 사회는 건강한 가정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한다. 아울러, 모든 책임을
기업에 떠넘길 수는 없지만 조직원들의 가정이 편안하고 건강해야 그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음을 상기시키고 친가족적인 정책으로
진정한 기업이익의 극대화를 꾀할 수 있도록 직간접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탄력적인 출퇴근시간제, 재택근무,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소신껏
신청할 수 있는 직장 분위기 조성이나 지나치게 업적만을 강조하는 기업문화나 음주문화의 개선을 통해 조직원들의 부담감을 줄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예산 부족을 핑계로 가족정책은 늘 뒷전인 정부도 이제 반성해야 한다. 일개인이나 일개 기업의 힘만으로는 이런 가족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제공하고 국방의 의무나 납세의 의무를 다 하고 있는 가정을 위해 국가도 일정 부분을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부처간의 긴밀한 협조 체계를 만들어 아동, 청소년, 여성, 노인 등 대상별로
따로따로인 가족정책이 아니라 가족을 한 덩어리로 보는, 발전적인 가족정책 수립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공부해야 한다. ‘가정 없는 가족,
진정한 가족이 없는 가정’으로서는 동북아의 중심 국가도, 21세기의 일류국가도, 진정한 민주평화 통일국가도 구호에 그칠 따름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