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아이,
말썽꾸러기아이
A라는 초등학교 1학년 남자 아이가 있었다. 어찌나 유별난 녀석인지 부모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뭐가 그리도 궁금한 게 많은지 시도 때도 없이 질문을 해 와 당황하거나 곤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두 번의 답변에
만족하는 법이 없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진땀을 흘린 적도 많았다. 그리고 어른 얘기에 끼어 들거나 말대꾸를 얼마나 잘 하는지 참을성이
많은 부모지만 울화가 치밀 때도 많았다. 그러나 가끔은, 말도 안 되는 억지가 아니라 어른이 반박할 수도 없는 논리적인 대꾸로 공격해 오면
부모도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고집이 얼마나 센지 자기 장난감을 사거나 옷을 살 때는 부모 말을 듣지 않았다. 춥다고 감기 들지
않게 옷을 챙겨 입고 나가라고 해도 말을 안 듣고 날씨가 따뜻하니 가볍게 입고 가라고 해도 제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게다가 엉뚱한 짓,
딴짓거리로 부모를 놀라게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넘었는데도 늦는 것은 다반사고 아이를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면 혼자 버스 타고 이모네 집에 와 있다고 전화를 걸어오는 아이였다.
자기 방 벽이나 책상 위에는 낙서들이
가득하고 엄마가 애써 정리해 놓은 방을 왜 ‘엄마 마음대로 해 놨느냐’고 다시 어지럽히는 녀석이었다. 호기심이 생기면 성냥불도 그어 보고 어항
속의 금붕어도 꺼내 보고 장난감도 다 뜯어 보아야 직성이 풀렸고 여자 아이들의 치마를 들추거나 샤워하는 엄마를 훔쳐보다 혼이 난 적도 있었다.
숙제 안 해 가면 선생님께 혼이 난다고 해도 그냥 가는 배짱에다가 지각하면 혼난다고 해도 일어날 줄 모르는 막무가내였다. 공부 잘 하고 말 잘
듣는 얌전한 아이가 착한 아이라는 기존 관념으로 보면 A라는 아이는 천하에 둘도 없는 말썽꾸러기요 못된 녀석이다.
하지만 정말 A라는 아이가 형편없고 가망없는 골치덩어리이기만 한 걸까? 학교 안
간다고 떼쓰지 않고 숙제 꼬박꼬박 해 가고 수업 시간에는 얌전히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하고 싸우는 일도 없이 사이좋게 지내고, 학교 끝나면
바로바로 집에 오는 아이가 착한 아이일까?
뭘 사 달라고 조르지도 않고 정리정돈 잘 하고 물건을 망가뜨리거나 옷을 더럽히는 일도
없으며 주사를 맞아도 울지 않고 잘 참아내는 아이가 부모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자식의 모습일까? 그것은 부모 속을 덜 썩이는, 키우기 편한 자식일
뿐이지 호기심이 많고 자기 주장을 할 줄 알며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줄도 아는 창의적인 아이는 아닐 수도 있다.
2~5세
사이에 강한 반항기를 거친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100명씩을 표본으로 청년기까지의 발달 과정을 추적 연구한 독일의 심리학자 헤처는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반항이 심했던 아이들 중 84%는 의지가 강하고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청년으로 성장한데 반해 반항기를 거치지
않았던 아이들은 24%만이 자주적인 젊은이로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하면 그 외의 대부분 어린이들은 자신의 판단으로 무언가를 결정하지
못하는 의존적인 인간으로 성장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말썽부리지 않고 말 잘 듣는 아이를 착한
아이라고 칭찬하고 또래의 아이들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비슷하게 노는 아이라면 안심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 우리 부모들이 자신의 고정관념을 바꾸어야
할 때다. 무엇이 진정으로 우리 자식을 위하는 길인지,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지금 무엇에 관심과 흥미가 있는지를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한다.
언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로 고민하며 몇 개씩이나 되는 학원으로 아이들을 내몰지 말고 아이들을 실컷 놀려야 한다. 많은 부모들이
‘논다’는 것을 ‘공부’나 ‘일’,’성실함’의 반대말로 생각하지만 아이들에게 공부와 놀이는 따로가 아니며, 놀이는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주기 때문에 건강에도 좋을 뿐 아니라 자발적으로 무엇엔가 몰입할 수 있는 ‘내적 동기부여’에 의해 진정한 성취감을 맛보게
하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컴퓨터 게임이나 만화 보는 것, 노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단정짓지 말고 무엇인가를 새롭게 배우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맛보게 해 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아무리 바쁘고 시간이 없고 피곤하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많은 부모들이 맞벌이나 다양한 취미 활동, 사회활동을 핑계로 의식주 뿐 아니라 가정 교육과 기본적인 육아까지 돈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어떤 것은 그 누구도 해 줄 수 없는, 부모만이 할 수 있고 부모가 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 중요한
‘때’를 놓치고 후회하는 아빠, 2~3정도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소홀히 했다가 20~30정도의 댓가를 치루고서도 절망하는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관심과 사랑을 갖고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착한 아이, 말썽꾸러기 아이라는 이분법적 분류로 아이들을 단정짓지 말고 그
무한한 호기심과 가능성에 눈을 돌리고 어려운 고비, 고비를 잘 참아낸다면 아이들의 눈부신 성장과 결실 앞에서 진정 행복한 웃음을 웃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