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문화
J씨 부부는 즐거움에 대한 욕구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허구헌날 술과 친구에 무슨 동호회,
무슨 친목회, 무슨 동창회니 해서 얼굴조차 보기 힘든 남편과 조용히 집안에서 소일하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요즘 매일매일이 전쟁이다. ‘저 사람은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다’는 남편은 ‘싫으면 자기나 안 하면 되지 왜 나까지 못 하게 하느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고 아내는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사는 게 다 그렇지, 인생이 뭐 소설이나 드라만 줄 아느냐’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에는 ’여자가 집안
살림은 안 하고 싸돌아다니면서 쓸 데 없는 데에 시간 낭비하고 돈 쓴다‘고 역정을 내는 남편도 있다.
요즈음 주 5일제 근무가 늘어나면서 여가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제도를
찬성하고 삶의 질과 가족관계의 향상을 기대하지만 주 5일제 근무가 긍정적인 변화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면서
오히려 갈등이 증폭되는 가정도 많다. 과거에는 얼굴을 마주 할 시간이 없어서 문제가 노출되지 않았을 뿐, 남편의 얘기를 잔소리나 간섭으로 듣거나
아빠의 얘기를 일방적인 지시나 구속으로 생각하는 자녀들간에는 불만만 쌓여가는 가정도 있고 자유시간을 꿈꾸던 여성들은 오히려 늘어난 가사노동에
힘들어하고 남편들 역시 늘어나는 지출과 피로로 고통을 하소연하기도 한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생존 경쟁과 고도성장이라는 압박감 아래 소비적이고
퇴폐적인 여가문화 때문에 진정으로 즐겁게 노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여가에는 휴식이나 기분전환, 자기개발이라는 기능이 있는데 이제까지의 여가는 창조적이고 자기개발에 도움이
되는 여가가 아니라 오락적이고 소비지향적이며 지나치게 개별화, 상업화된 향락적인 구석이 많았다. 그리고 여가라고 하면 TV보고 잠자고 먹고
마시고 쇼핑하고, 차 타고 멀리 가서 돈만 쓰고 오는 피곤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개인의 만족감을 높이고 가족이나 사회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여가문화, 가족들이 함께 만들고 참여하는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여가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대만이 아니라 적극적인 노력과
학습이 요구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 단위의 여가, 부부 단위의 여가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 세대별, 성별로 다를 수 밖에 없는
여가에 대한 인식이나 취향을 존중하고 서로 양보하면서 부부나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나 운동을 개발할 것을 권하고 싶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자녀들에게 심리사회적 발달을 위해 더 없이 좋은 기회이며 가족간의 소속감이나 일체감을 키울 수 있는 바람직한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세계일보
2002.12.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