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들의 반칙
삶의 즐거움 가정밖에서만
찾아
"여보세요, 응. 모임은 금방 끝날 것 같애. 애들은 뭐 해? 찬호 엄마, 오늘
우리 데이트 한번 할까? 거기서 만나지 뭐. 아니, 아니, 애들은 재워 놓구 당신만 나와."
저녁 모임이 있는 식당의 화장실에 들렀다가 40대 초반의 남성이 아내에게 전화
거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귀가시간을 미리 알려주고 아내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중년 남성의 아름다운 모습에 인사라도 건네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남편과는 달리 여전히 삶의 즐거움을 가정 밖에서만 찾는 남성들이
있고, 그런 남편들을 비난하고 원망만 하지 온기가 느껴지는 따뜻한 가정을 가꾸기 위해 노력은 하질 않는 아내 또한 많다. 그리고 내가 집에 일찍
들어가고 외식이라도 가끔 하고 선물이라도 주면, 언제든 아내와 가족들은 나를 환영하고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성들도 있고 지나간 일, 잘못된
일, 내가 사과만 하면 큰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남성들도 많다.
그들은 그것이 큰 착각일 수 있음을 모르고 있다. 기약 없이 기다리는 일에 이제
너무 지쳐 포기하거나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아내들, 결단을 내리기에는 여러 가지 여건들이 여의치 않아 언젠가만 기다리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부부들이 의외로 많다. 늦기 전에 그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자동경보장치도 없이 남편 따로, 아내 따로의 생활에 대화마저
없으니 그 때를 놓치고서야 뒤늦게 후회를 한다. 잊지 않고 기념일을 챙기고 아내의 심정을 헤아려 꾸준히 점수라도 따뒀다면 몇번의 인출로도
부부간의 사랑과 믿음의 잔고가 바닥나지 않을 터인데 일방적으로 인출만 해서 잔고가 바닥나고 마이너스 한도를 넘어 파산으로 치달으면 그 상처는
영원히 회복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지난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우리는 경기규칙에 따라 옐로카드,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하는 선수들을 보았다. 최승은 시인의 옐로카드란 시 한 편을 읽으며 우리 부부만의 경기규칙과 경고시스템을 미리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내 일기장에 다 적어 두었다가/이담에 이담에 보여줄 거야. 맨날
맨날/당신만 혼자 집에 놔두고/나,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러 다닐 거야. 밤마다/지친 하루를 등에 업고/어설피 잠드는 나는/일기에 꼬박꼬박/당신의
반칙을 적어 둔다/당신에게 보내는/옐로 카드. 그 카드가 쌓이고 쌓이면 /선수퇴장이라는 걸/당신은 알고나 계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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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세계일보
2002.1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