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 공부하기
며칠 전 결혼 21주년을 맞았다. 결혼기념일에 직원들에게 하루씩 휴가를 주는지라 나도 아내와 함께
하루를 지낼 수 있었다. 아내를 위해 카드를 고르고 꽃을 준비하면서 기뻐할 아내의 얼굴을 생각하니 내가 먼저 행복해졌다. 맛있는 점심도 먹고
영화도 함께 보면서 우리를 불륜 관계로 보는 건 아닐까 하며 서로 보고 웃었다.
결혼 20주년을 넘기면서 결혼기념일이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결혼과 부부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고 결혼기념일을 뭔가 좀 특별하게 기념하고 싶었 다. 이제껏 잘 참고 살아 준 아내가 고맙고 사랑스러웠으며 뒤늦게나마 뭔가를 깨닫게 된
나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결혼을 못 하거나 아이를 못 가져서 그리고 아이들과 남편, 아내 때문에 고민하 고 괴로워하는 수많은 부부들을
떠올리고 우리는 얼마나 복이 많은가를 되돌아 보면서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지금은 결혼과 가족을 가르치고 부부에 대해서 떠들고 다니지만 결혼할 당시엔 난 아무 것도 몰랐다.
남들이 다 하는 결혼, 나도 당연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혼의 의미에 대해서 진지 하게 생각해 보거나 내가 왜 결혼하려고 하는지 크게
고민하지도 않았다. 결혼하고 때가 되면 아이는 생기는 것이고 여자는 아이 키우고 집안 살림하고 남자는 돈 버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고나 할까. 남편 노릇은 물론 아빠 역할에 대해서 제대로 배운 바가 없었고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야 되는지도 몰랐고 나의 사소한 말 한 마디와 생각 없는 행동이 아내에게 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나는 몰랐다. 이들 때문에 피곤해 하는 아내를 집에 두고 혼자 영화 보러 다녔고 애정 표현에도 서툴고
인색했으며 집안 식구들 앞에서 아내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팔불출이나 하는 짓이라고 여겼던 미성숙한 어른이 었다.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결혼
20주년을 넘기며 때 늦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지만 이런 것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많은 갈등과 고통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 다.
요즘, 대학 입시철이라고 다들 야단이지만 우리는 수능 시험을 보거나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한 만큼의
공부도 안 하고 결혼을 하고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건 아닐까. 이제는 남편과 아내 노릇, 엄마와 아빠 역할에 대해서 제대로 배워야겠다. 부부간에
대화를 어떻게 나 누고 중년의 위기를 어떻게 넘겨야 하며 은퇴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지혜롭고 아름답게 나이들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세계일보 2002/11/2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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