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아빠
친구가 나를 찾았다. 아이 둘을 엄마에게 딸려 영국에 유학 보내고 혼자서 회사에 다니는 기러기
아빠였는데 내가 왜 이렇게 사나 하는 생각에 요즘은 사는 재미가 없다는 하소연이었다. 아내의 잔소리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도 잠시였을 뿐 사 먹는
밥, 혼자 먹는 밥도 지긋지긋하고 아내가 바가지라도 긁을 때는 밤늦게 들어가는 재미도 괜찮았는데 이제 술집을 찾는 즐거움도 시들해지고 불꺼진
아파트에 혼자 들어가기도 싫어 밤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있는다는 얘기였다.
그런가 하면 교육은 구실일 뿐 별거나 이혼의 전단계로 떨어져 사는 부부, 외도에 빠진 남편이 송금을
일방적으로 중단하여 외국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부인과 아이들, 그리고 오랜 외국 생활에서 돌아온 아내가 이혼소송을 제기하고 아이들마저 아버지를
냉대하여 가슴을 치는 중년 남성의 얘기를 접하기도 한다. 물론 통신수단 등을 잘 활용하고 슬기롭게 대처하여 오히려 함께 지내는 것 못지 않게
알뜰살뜰 사는 가족도 있지만 외로움과 경제적인 어려움 그리고 부부 갈등으로 인하여 금이 가고 헤어지는 부부 또한 적지 않다.
어떤 사람은 이 땅의 잘못된 공교육 때문에 국부와 인적 자원이 유출된다고 하지만 잘못된 가족문화가
공교육을 더욱 황폐화시키는 측면도 있다. 형태만 핵가족일 뿐 남편 따로 아내 따로의 전통적인 가족 문화 속에서 지나치게 자식 중심으로 사는
기형적인 부부의 모습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이다. 아이들이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자식 잘 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풍토
속에서, 경쟁에 살아남으려면 영어도 잘 해야 하고 학벌도 중요하겠지만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자녀들에게 좀 더 나은 교육 서비스를 받게 하기 위한 부모의 교육열을 나무랄 수도
없고 땀흘려 번 깨끗한 돈으로 쓸 만한 여유가 있는 계층의 자유로운 선택을 싸잡아 매도할 수도 없지만 그로 인해 감수해야 할 손실과 대가를
정확하게 알고 좀 더 신중한 결정을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갈등과 불화 속에서도 부부와 가족이 함께 지내면서 애정과 친밀감도 쌓여가는 것이고
같이 식사하고 TV 보고 차를 타고 가는 일상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가정교육일진대 오랫동안의 별거 생활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것과 중요한 때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갈 수 있는 어느 정도의 나이를 고려하고 자녀들의 의견과 의지를
존중하여 보내는, 분수에 맞는 유학으로 기러기 가족과 교육이산가족의 고통을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세계일보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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