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씨
퇴근길 차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사랑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을 때, 막 꽃집을 지나가고 있었다.
문득 아내의 얼굴이 떠올라서 나는 차를 세웠다. 누구에게 선물할거냐는 꽃집 아가씨의 질문에 아내에게 줄 거라고 했더니 사모님은 좋겠다며 웃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하고 잔잔한 노란 수국과 연두빛 수국을 섞어서 예쁘게 포장해 달라고 주문하고, 꽃집 아가씨의 손놀림을 지켜보니 내가 먼저
행복해졌다.
그러나 예전엔 아내에게 꽃을 선물하거나 애정 표현을 하는 편이 아니었다. 신혼 때도 혼자 영화를 보러
다니고 아이가 운다고 베개 들고 옆방에서 자는 이기적인 남편이었고, 회사로 전화를 건 아내에게 주위의 시선 때문에 퉁명스럽게 대꾸하던 무심한
남편이었다. 부부는 사랑으로 사는 게 아니라 정으로 사는 것이라고 어디서 주워 들은 얘기로 아내를 훈계하려 들었고, 목걸이나 반지를 받고
싶어하는 아내에게 아예 돈으로 줄 테니 그 돈으로 당신 좋아하는 것 사라고 했던, 여자 마음을 몰라도 한참 몰랐던 무지한
남자였다.
그러던 사람이 가정경영연구소를 열고 가족학을 공부하고 결혼을 가르치면서 조금씩 조금씩 눈을 떴다.
결혼이 무엇인지, 부부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남편 노릇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고 즐겁게 해 줄 것인가로
고민하던 결혼 전의 나를 떠올리며 그 시절 그때였더라도 내가 아내에게 이랬을까를 생각하며 반성했다.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이
아내이고,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관계가 부부 사이임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던 것이다.
사랑이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40대는 물론 60∼70대도 나름대로의 사랑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라디오의 부부 사연을 들으며 눈물이 핑 돌아 아내에게 전화를 할까 망설이기도 하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상담을 청하는 어떤 여성 앞에서
내가 아내에게 준 상처의 깊이를 헤아려 보며 진심으로 뉘우쳤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깨달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부부 관계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특성이 있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절망적이고 원수 같은 부부일지라도
사랑의 불씨를 보듬고 잘 지켜내어 키워 나가면 신혼 때처럼 다시 행복해질 수도 있고, 아무 문제도 없이 지극히 행복해 보이는 부부라도 그 사랑을
정성 들여 가꾸지 않으면 금이 가고 깨지기도 한다. 휴대전화를 수시로 충전하고 새 집도 때 맞춰 칠하고 도배하고 수리해 줘야 하듯 부부간의
사랑에도 수시로 물 주고 거름 주고 정성 들여 가꿔야 하는 것이다.
사랑은 연애 편지와 사전에나 등장하는 추상명사도 아니고 유행가 속의 낭만도 아니며 성직자에게만 가능한,
불가능한 경지도 아니다. 사랑은 결심이고 실천이며, 현실이고 일상이어야 한다.
[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세계일보
2002.10.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