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자위
상담실로 이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남편이 오랫동안 잠자리를
함께하질 않고 매일 밤 인터넷만 해서 도대체 뭘 하나 싶어 서재방 문을 열어봤더니 음란사이트를 보며 자위를 하고 있더라는 얘기였다. 이 불결하고
짐승 같은 남자와 계속 살아야 하는지, 이 남자가 변태 성욕자가 아닌지, 자기는 매일 밤 눈물로 지새운다는 결혼 2년차 여성의
하소연이었다.
짧은 편지의 어느 한 쪽 얘기만으로 상황을 단정짓기는 곤란하지만
그 남자는 변태 성욕자나 짐승이 아닌,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남성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 여성이 충격을 받고 괴로워하는 것은 두 사람의
성각본이 틀리기 때문이다.
성각본이란 사람이 어떻게 성적으로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일종의
성에 대한 관념으로 사람마다 다르고 나이, 성별, 지역, 종교, 부모의 양육 태도 등 많은 것에 의해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자주 부부간 갈등과
불화의 원인이 된다.
한때는 여자가 성적인 요구를 먼저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여자가 성욕을 느낀다는 사실조차 추잡한 일로 죄악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부부간의 성은 출산을 위한 것이고 성의 즐거움은 남성들이 주로 밖에서
찾는 것이었다. 혼전 성관계는 큰일날 사건이었으며 동성애는 먼 나라 얘기였다. 그러나 사회가 바뀌면서 성에 대한 생각이나 가치관, 행동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제는 여성들이 성 문제로 상담실을 자주 찾는다. 성적인 욕구를 해소해 주지 못하는 남편과 이혼하고 싶다 외도한 사실을 남편이
알아버렸는데 남편은 용서해 주겠다며 같이 살자고 하지만 그 사람 하고는 살고 싶지 않다는 등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다.
성이 부부관계의 전부는 아니지만 만족스러운 성생활은 행복한
결혼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항이다. 성을 터부시하거나 쾌락적인 성에만 탐닉하거나 이중적인 성의 잣대로 남녀를 가르는 것은 더 이상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며 신뢰와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부부가 성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바르게
전달할 수 있어야 불필요한 오해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횟수나 시간에 얽매이고 오르가슴을 유일한 목표로 삼거나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요하는 남편의 태도도 문제지만 남편의 요구를 묵살하고 성을 무기로 사용하는 아내의 태도도 옳지 않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해결하기 어려운 성기능 장애나 심각한 의처증, 의부증 등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성은 누가 누구를 위해서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며
부부의 권리와 의무이자 즐거움, 자연스러운 욕구이고 사랑의 표현이며 부부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예술 작품임을 명심한다면 결혼생활의 만족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세계일보
2002/09/29 |